유엔이 27일(현지시간) 총회를 열어 쿠바에 대한 미국의 무역금지 조치 해제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찬성 191표, 반대 2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채택했다. 반대한 국가는 미국과 이스라엘 뿐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올해 쿠바와 국교 정상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져 그 이유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대쿠바 무역제재 해제를 의회에 요청한 마당에 미국이 유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자 모순된 행위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쿠바도 지난해까지 늘 반대표를 던진 미국이 지난 7월 국교 정상화 이후 첫 투표에서 찬성이나 적어도 기권 표를 던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날 미국이 쿠바에 대한 무역금지 조치에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은 해당 결의안이 대부분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CNN 등은 해석했다. 쿠바가 주도한 결의안은 미국의 금수조치가 자유로운 국제무역을 방해해 쿠바 국가주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유엔 헌장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적시하고 있는데, 미국이 이를 찬성할 경우 기존에 취해온 금수조치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로널드 고다드 유엔 주재 미국 부대사는 표결 직전 “쿠바가 제출한 결의안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을 바꾸지 않는 한 기권표를 던지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쿠바 정부는 그동안 유엔에 제출한 결의안과 유사한 내용을 이번에도 제출했다”며 “결의안이 양국간 국교 정상화의 정신을 담아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은 투표 직후 “바뀌어야 하는 것은 결의안이 아니라 금수조치 그 자체”라고 반발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미국의 금수조치는 국제법에 반하며 쿠바인 인권을 모독하는 행위이자 학살이나 다름없다”며 “금수조치가 존재하는 한 매년 결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신들은 미국 연방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미국이 기권표를 던지면 자국을 비판하는 유엔 결의안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돼 공화당과 의회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하려면 향후 의회 입법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화당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자제했다는 평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쿠바는 미국의 반대 표결에 큰 실망을 나타냈다. 아바나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미국은 금수조치가 해제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투표에서는 반대표를 던졌다”며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의사 믹달리아 페레스는 “미국산 항암제가 필요하다”며 “금수조치 해제가 생사의 기로를 가를 수도 있다”고 호소했다.
쿠바는 1992년부터 미국의 금수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해왔다. 쿠바는 매년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을 받아냈으나 결의안에 구속력이 없어 실질적 변화는 끌어내지 못했다. 쿠바는 미국의 무역제재 조치로 지금까지 8300억 달러(약 939조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슬기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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