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에 이어 당 2, 3세대를 대표했던 덩샤오핑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위상이 최근 들어 확연하게 엇갈리고 있다. 덩샤오핑 전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 총설계자’라고 칭송받으며 재조명받고 있는 반면 장쩌민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위챗과 같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죽은 덩샤오핑이 다시 살아 돌아오고, 살아있는 장쩌민은 골로 가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다.
시진핑 정권 들어 두 지도자 위상이 양극화된 가운데 덩샤오핑이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화통신은 지난달 28일 베이징의 중앙당교 교정에 세워진 덩샤오핑 동상을 집중 보도했다. 중앙당교는 당정 최고 간부들을 양성하는 당 최고 교육기관이다. 교정 한 가운데 덩샤오핑 동상을 세웠다는 것은 중국 당국이 덩샤오핑을 최고 지도자로 세우겠다는 것을 의미다.
중국 당국은 덩샤오핑 생일인 지난달 22일을 전후해 그의 어록집을 편찬했고, 이달말부터 중국 전역에 1년 동안 그의 전기 연속극을 방영할 계획이다. 신화통신은 “위대한 개혁개방의 아버지이자 중국 경제의 설계자”라고 칭송했다. 중국 당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덩샤오핑을 마오쩌둥과 함께 신의 반열에 올리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장쩌민 전 주석에 대해선 조용하게 ‘흔적 지우기’가 진행중이다. 최근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장쩌민 전 주석의 친필 휘호 작품들이 잇따라 철거되거나 옮겨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 간부 교육기관인 중앙당교는 지난 21일 베이징시 하이뎬구에 있는 중앙당교 남문 앞 머릿돌을 교내로 옮겼다. 머릿돌에는 장쩌민이 친필로 쓴 ‘중공중앙당교’란 글이 새겨져 있다. 이보다 앞서 상하이 공군정치학원에서도 장쩌민 휘호가 사라졌고 중국 고위층 전용병원인 베이징 인민해방군 301병원도 장쩌민 휘호를 떼낸 것으로 전해졌다.
장쩌민 위상이 추락한 것은 시진핑 정부가 반부패 개혁을 추진한 뒤로 장쩌민과 불화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궈보슝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시진핑 집권후 부패 혐의로 낙마한 최고위급은 모두 장쩌민의 최측근들이다. 특히 고인인 덩샤오핑을 띄우고, 살아있는 장쩌민을 배제하는 배경에는 ‘혁명원로’가 이룬 역사를 계승하면서 전통성을 부여받는 동시에 시진핑 독주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 담겨있다. 1997년 덩샤오핑이 사망하기 전까지 중국은 혁명원로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원로정치’ 국가였다. 혁명원로를 부정하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은 철저히 덩샤오핑과 같은 혁명원로를 치켜세우고 있다.
[김대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