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한국, 일본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가 각축장을 벌이는 베이징 거리에서 최근 낯선 로고가 심심치 않고 눈에 띈다.
주인공은 중국 장성자동차와 장안자동차. 중국 토종 브랜드가 BMW 폭스바겐 현대차 등 베이징거리의 오랜 ‘주인’들을 밀어내고 신흥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11일 베이징 차오양 공원 인근 장성 대리점에서 만난 위모 씨(37)는 “예전에는 무조건 외국 브랜드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중국 브랜드 품질이 좋아졌다는 얘기가 많아 직접 보러 왔다”고 말했다.
위씨가 이날 아내와 함께 유심히 살펴본 모델은 하푸H6다.
장성 최고의 히트차종으로, 5월 한단간 3만대가 팔려 중국내 외국계와 토종 브랜드를 통틀어 전체 1위에 올랐다. 이보다 배기량이 약간 작은 하푸H2도 1만1000여대가 팔렸다. 두 모델의 공통점은 SUV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소득수준이 오르고 레저붐이 일면서 자동차 소비의 무게중심이 SUV로 옮겨갔다. 중국판 ‘아빠 어디가’인 ‘빠바 취나’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SUV 붐을 부채질했다.
장성자동차와 장안자동차는 SUV 붐의 최대 수혜자다. 중국인 취향에 맞는 SUV 신모델을 발빠르게 내놔 외국 브랜드가 장악해온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장성의 경우 SUV 브랜드 HAVAL을 독립해 운영하고 있는데 하푸H6를 비롯해 SUV 모델만 7개에 달한다. 제품 선택의 폭이 외국계 브랜드를 능가하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들이 장성 SUV를 찾게된다. 지난달 장성은 역사적인 판매 증가율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해 42% 급증한 것. 장안자동차도 같은 기간 판매증가율 35%를 기록했다. 제일폭스바겐(-19%), 상하이뷰익(-9.7%), 베이징현대(-12.1%) 등이 10% 안팎의 감소세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며 토종 브랜드의 ‘독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비를 가른 것은 SUV다. 세단형 승용차 판매는 10% 가까이 줄어든 반면 SUV는 50% 증가했고, 이 증가분의 대부분을 토종 브랜드가 차지했다. 장성과 합께 토종 브랜드 쌍두마차격인 장안자동차의 CS75는 SUV 판매량 3위에, 한때 짝퉁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장화이자동차의 루이펑S3는 7위에 올랐다. 이에 반해 둥펑혼다와 베이징현대는 세단형 판매 증가분을 SUV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상쇄해버렸다. 문제는 이런 트렌드가 5월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올해초부터 줄곧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시장의 ‘샤오미’로 각광받으며서 이들 토종 브랜드의 세단형 판매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외국계 합작브랜드가 판매량 급감으로 고전한 지난달 장안자동차 ‘이둥’은 1만6000대가 팔려 작년 동기와 비교해 24% 증가세를 기록했다. 5월 세단형 판매량 기준 11위로 같은 세그먼트에 있는 베이징현대의 루이나(한국모델명 액센트.12위)를 제쳤다. 자신감을 얻은 장안은 5년내 세계톱10 진입을 목표로 내걸었다. 리웨이 장안 부사장은 최근 “연간 판매대수를 2020년까지 1000만대로 늘리겠다”며 향후 10년간 3조원이 넘는 투자계획을 밝혔다.
중국 토종브랜드의 부상에는 가격경쟁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장성의 하푸H6(배기량 1500cc)는 10만~12만위안, 장안의 CS75(200cc)는 10만~14만 위안. 각각 경쟁차종이라 할 수 있는 상하이폭스바겐의 티구안, 둥펑혼다의 CR-V와 비교해 30%이상 싼 가격을 자랑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삼성 애플과 어때를 나란히 하게 된 것처럼 자동차 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베이징현대를 비롯한 외국계 합작 브랜드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중국 자동차시장이 과거와 같은 공급자주도 시장에서 소비자주도 시장으로 바뀌고 있어 토종 업체들처럼 SUV 라인업을 대폭 확대하거나 가격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벤츠나 BMW처럼 아예 고가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 상하이폭스바겐과 베이징현대 등은 최근 일제히 차 값을 인하하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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