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불멸의 기록이 유력하다.
21세기 KBO 타자들의 실력과 특성을 고려하면, 그 어느 특급 에이스가 던져도 이제 73구 완봉승은 힘들 것 같다.
그러나 28년 전, 1987년 8월25일 인천구장 마운드에 올랐던 그해의 꼴찌팀 청보의 에이스 임호균은 1시간54분만에 73개의 공으로 해태 타선을 셧아웃시킨다. 5-0 승. 아직까지 KBO의 정규이닝 최소투구 완봉승으로 남아있는 기록. 27명의 타자로 끝낸 무잔루 경기였고, 무려 한국시리즈 4연패 타이거즈(1986~1989년)의 최전성기 때였다.
“컨디션이 특별히 좋은 날은 아니었죠. 그래서 더 집중하면서 던졌습니다.”
임호균씨(59·전 삼성 투수코치)는 그 날을 담담히 기억한다. 동아대-삼미의 ‘언더독’ 팀들을 거쳤던 그는 현역 시절 내내 강타선에 홀로 맞서는 ‘명승부’ 단골 투수였다.
“투수가 가장 잘 던져야 하는 공은 속구도, 어떤 진귀한 변화구도 아닌 스트라이크입니다.”
이닝 당 8개 남짓, 타자 당 3구도 채 던지지 않았던 마운드의 주인답다. 그의 사전엔 ‘간보는 공’이 없었다.
투수와 타자의 승부는 ‘기싸움’이 기본이라는 임호균씨는 “투수는 공을 치라고 던져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맞혀도 7, 8할은 범타일 뿐이다. 투수에게 훨씬 유리한 싸움이다. 투수가 주춤하고, 확신을 잃고, 정면승부를 유보할 때, 이 확률은 오히려 일그러진다.
지난해 평균 경기시간이 3시간26분까지 늘어난 KBO는 2015시즌 ‘스피드업 규정’을 더욱 강화했다. ‘스피드업’은 한미일 프로야구가 지난 십수년간 줄기차게 노력해온 과제다.
임호균씨는 강경한 ‘스피드업’ 찬성파다. 팬들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줘야 하는 게 프로의 의무라면, ‘스피디한 경기’가 정답이기 때문에. 9명의 수비수와 1명의 타자로 구성된 다이아몬드 위 10명의 캐스트가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치기 위해선 타이트한 템포가 필수라고 믿는다.
“아무리 훌륭한 야수라도 근육을 긴장시키며 최고조로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은 5~10초를 넘을 수가 없어요. 투수와 타자의 승부가 굼뜨면, 타구에 순간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수비수의 베스트도 끌어내기 힘들죠. 뜬금없는 호수비를 기대해선 안 됩니다.”
공 하나에 반응하는 모두의 동작은 유기적이다. 템포가 느려질수록 ‘그들’의 집단 퍼포먼스 퀄리티는 점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빠른 경기’가 ‘더 나은 경기’일 확률이 높은 이유다.
현역 시절 타석에서 느릿느릿 준비동작이 많은 타자들과 맞서면,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해가며 재촉하곤 했다. 그는 늘 빠른 승부를 이용했다.
“타자가 이래저래 내 공을 예측하고 궁리할 여유도 줄 필요가 없어요. 준비된 투수는 자기 페이스로 경기를 지배해야 합니다.”
늘어진 경기시간의 주범으로 꼽히는 지속적인 ‘타고투저’ 현상에 대해 그 역시 안타까움이 많은 지도자다. 그러나 단순히 ‘투타의 전력불균형→다득점 경기’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격적인 투수들이 너무 희소해진 것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타자를 못 치게 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쳐봐라 하고 자신 있게 던져야하는데...”
기량 이전에 후배들의 멘탈이 아쉽다. 주도적으로 승부를 리드하면서, 투수에게 유리한 빠른 템포로 경기를 앞장서 끌고 가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
“70개쯤 최고 구위가 유지되고 이후 30개는 점점 힘이 떨어지면서 버티는 수준이라면, 100구를 못 던지는 투수죠. 100구를 던질 수 있는 선발 투수를 키우려면 훈련에서 150구, 200구의 구위를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감독이 그러더라구요. 선발 투수가 60~70개쯤 던지고 5회를 채운 뒤 바꿔주려나 기대하면서 벤치를 쳐다보는 일도 있다고... 구위가 떨어졌다면 그는 60~70구도 못 던지는 어깨인 거고, 스스로 다 던졌다고 생각한다면, 멘탈이 작아진 거죠.”
투수의 집중력있는 성장과 보호를 목표로 하는 마운드의 분업화가 경기와 리그의 수준 향상에는 보탬이 되지 못한 채, 마운드의 고비용화라는 결과만 낳았다면 “뭔가 잘못된 그림”이라는 의견이다.
KBO의 정규이닝 최단시간 경기는 1시간33분이다. 1985년 9월21일 부산 구덕구장의 청보-롯데전. 그의 3-0 완봉승이었다.
기다림을 몰랐던 호쾌한 승부사는 “빨리 빨리 던지고 앉아 쉬어야지, 왜 오래 마운드에서 벌을 서냐”고 웃는다. 문득 우리 평범한 투수들의 고통을 잘 몰라주시나 섭섭해도 끄덕여줄 수 밖에.
[chicleo@maekyung.com]
21세기 KBO 타자들의 실력과 특성을 고려하면, 그 어느 특급 에이스가 던져도 이제 73구 완봉승은 힘들 것 같다.
그러나 28년 전, 1987년 8월25일 인천구장 마운드에 올랐던 그해의 꼴찌팀 청보의 에이스 임호균은 1시간54분만에 73개의 공으로 해태 타선을 셧아웃시킨다. 5-0 승. 아직까지 KBO의 정규이닝 최소투구 완봉승으로 남아있는 기록. 27명의 타자로 끝낸 무잔루 경기였고, 무려 한국시리즈 4연패 타이거즈(1986~1989년)의 최전성기 때였다.
“컨디션이 특별히 좋은 날은 아니었죠. 그래서 더 집중하면서 던졌습니다.”
임호균씨(59·전 삼성 투수코치)는 그 날을 담담히 기억한다. 동아대-삼미의 ‘언더독’ 팀들을 거쳤던 그는 현역 시절 내내 강타선에 홀로 맞서는 ‘명승부’ 단골 투수였다.
“투수가 가장 잘 던져야 하는 공은 속구도, 어떤 진귀한 변화구도 아닌 스트라이크입니다.”
이닝 당 8개 남짓, 타자 당 3구도 채 던지지 않았던 마운드의 주인답다. 그의 사전엔 ‘간보는 공’이 없었다.
투수와 타자의 승부는 ‘기싸움’이 기본이라는 임호균씨는 “투수는 공을 치라고 던져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맞혀도 7, 8할은 범타일 뿐이다. 투수에게 훨씬 유리한 싸움이다. 투수가 주춤하고, 확신을 잃고, 정면승부를 유보할 때, 이 확률은 오히려 일그러진다.
지난해 평균 경기시간이 3시간26분까지 늘어난 KBO는 2015시즌 ‘스피드업 규정’을 더욱 강화했다. ‘스피드업’은 한미일 프로야구가 지난 십수년간 줄기차게 노력해온 과제다.
임호균씨는 강경한 ‘스피드업’ 찬성파다. 팬들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줘야 하는 게 프로의 의무라면, ‘스피디한 경기’가 정답이기 때문에. 9명의 수비수와 1명의 타자로 구성된 다이아몬드 위 10명의 캐스트가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치기 위해선 타이트한 템포가 필수라고 믿는다.
“아무리 훌륭한 야수라도 근육을 긴장시키며 최고조로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은 5~10초를 넘을 수가 없어요. 투수와 타자의 승부가 굼뜨면, 타구에 순간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수비수의 베스트도 끌어내기 힘들죠. 뜬금없는 호수비를 기대해선 안 됩니다.”
공 하나에 반응하는 모두의 동작은 유기적이다. 템포가 느려질수록 ‘그들’의 집단 퍼포먼스 퀄리티는 점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빠른 경기’가 ‘더 나은 경기’일 확률이 높은 이유다.
현역 시절 타석에서 느릿느릿 준비동작이 많은 타자들과 맞서면,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해가며 재촉하곤 했다. 그는 늘 빠른 승부를 이용했다.
“타자가 이래저래 내 공을 예측하고 궁리할 여유도 줄 필요가 없어요. 준비된 투수는 자기 페이스로 경기를 지배해야 합니다.”
늘어진 경기시간의 주범으로 꼽히는 지속적인 ‘타고투저’ 현상에 대해 그 역시 안타까움이 많은 지도자다. 그러나 단순히 ‘투타의 전력불균형→다득점 경기’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격적인 투수들이 너무 희소해진 것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타자를 못 치게 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쳐봐라 하고 자신 있게 던져야하는데...”
기량 이전에 후배들의 멘탈이 아쉽다. 주도적으로 승부를 리드하면서, 투수에게 유리한 빠른 템포로 경기를 앞장서 끌고 가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
KBO의 평균 경기시간은 지난해 3시간26분으로 역대 최장을 기록했다. 임호균이 던졌던 정규이닝 최단시간 경기(1시간33분)의 곱절을 훌쩍 넘는 시간이다.
KBO에는 완투승, 완봉승이 점점 귀해지고 있다. 선발 투수들의 투구 수를 관리하는 마운드의 분업화가 정착되면서, 완투는 예전보다 훨씬 나오기 힘들어졌다. 장기적으로 투수의 어깨를 보호해주고 선수 수명이 길어진다는 점에서 임호균씨도 마운드의 분업화를 ‘선진 야구’로 생각한다. 다만 이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올바른 이해와 적절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70개쯤 최고 구위가 유지되고 이후 30개는 점점 힘이 떨어지면서 버티는 수준이라면, 100구를 못 던지는 투수죠. 100구를 던질 수 있는 선발 투수를 키우려면 훈련에서 150구, 200구의 구위를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감독이 그러더라구요. 선발 투수가 60~70개쯤 던지고 5회를 채운 뒤 바꿔주려나 기대하면서 벤치를 쳐다보는 일도 있다고... 구위가 떨어졌다면 그는 60~70구도 못 던지는 어깨인 거고, 스스로 다 던졌다고 생각한다면, 멘탈이 작아진 거죠.”
투수의 집중력있는 성장과 보호를 목표로 하는 마운드의 분업화가 경기와 리그의 수준 향상에는 보탬이 되지 못한 채, 마운드의 고비용화라는 결과만 낳았다면 “뭔가 잘못된 그림”이라는 의견이다.
KBO의 정규이닝 최단시간 경기는 1시간33분이다. 1985년 9월21일 부산 구덕구장의 청보-롯데전. 그의 3-0 완봉승이었다.
기다림을 몰랐던 호쾌한 승부사는 “빨리 빨리 던지고 앉아 쉬어야지, 왜 오래 마운드에서 벌을 서냐”고 웃는다. 문득 우리 평범한 투수들의 고통을 잘 몰라주시나 섭섭해도 끄덕여줄 수 밖에.
[chicle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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