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괌) 김원익 기자] ‘창용불패’ 임창용(38)은 한·일 통산 296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한국에서 13시즌 동안 168세이브를 올렸고,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해 야쿠르트서 4시즌 동안 128세이브를 더했다. 이미 야구선수로서어지간한 영광을 이뤘다. 마흔이 가까워오는 나이. 열정이 식을 수 있다. 하지만 임창용은 다음 목표를 세웠다. 300세이브도 아니고 무려 400세이브다. “던질 수 있을 때까지는 손에서 공을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괌 레오팔레스 리조트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린 임창용을 현지에서 18일 MK스포츠가 만났다.
다음은 임창용과의 일문일답(下편)
역대를 따져 봐도 손꼽히는 고령 루키였다.
“맞다. 아마 컵스 역사상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루키였을 것이다.(웃음) 그래도 나이가 있다고 그런지 루키 대접을 하지 않고 베테랑 대우를 해주더라. 사실 메이저리그로 콜업되고 나서 재밌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신인들의 통과의례인 ‘루키헤이징’이다. 어느 날 원정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에 들어오니 신인들의 라커룸에 여성 속옷 란제리가 나란히 걸려있더라. 순간 아찔했는데 다행히 나는 없었다. 당시 한 15명 정도가 란제리를 입고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이후에 호텔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 입혀놓더니 5분 쯤 전에는 아예 차에서 내려서 걸어오게 하더라. 우리 팀의 앤서니 리조 같은 특급 유망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그 모습을 웃으면서 쳐다보는 걸 보니, ‘LIM은 안 입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웃음)”
컵스의 분위기는 어땠나. 적응은 힘들지 않았나
“사실 하위권 전력임에도 분위기가 밝고 클럽하우스 분위기가 좋았다. 또 경기에 들어가면 1경기, 1경기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설령 그렇게 하고 난 이후에 지더라도 죄인처럼 처지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 좋았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즐거움이 야구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야구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하는 것이 전제다. 하지만 반드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즐기는 마음이 없이는 오랫동안 열정을 유지할 수 없다. 타자를 상대했을 때 어떻게 안타를 맞지 않고 삼진을 뺏을까, 어떻게 이 타자를 공략할까하는 그런 마음들이 재밌다고 느낄 때 다음 투구가 기대되고 또 그만큼 던질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들도 즐겁게 된다고 생각한다.”
“컵스의 선수 구성이 애매한 부분은 있다. 만약 7회, 8회, 9회 등판하는 투수들이 모두 정해져 있다면 내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경쟁자들보다 좋은 투구를 해나가도록 준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치고 나가는 선수가 없다보니 이 유망주에게도 기회를 주고, 저 유망주에게도 기회를 주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기회가 줄어드는 감이 있다.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많은 상황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또 이번 스프링캠프 경쟁에서부터 이기는 수밖에 없다.”
통산 300세이브에 단 4세이브만이 남았다.
“아니다. 목표를 400세이브로 잡고 있다. 던지는데 몸 상태에 지장만 없다면 계속 타자들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 힘이 빠지면 요령으로라도 상대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알고 있다. 나이 많은 선수들은 구속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을 던질 수 있는 순간까지는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다.”
선수 생활 동안 잦은 부상과 ML 진출 실패, 거취문제 등이 겹쳤다. 어지간하면 좌절하거나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굴곡이 많았다. 그 경험들은 지금의 임창용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누구나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인생이 아닌가. 나도 여러 과거들을 있다보니 이제는 돌이켜 보면 그런 시기를 통해, 지금와서는 많은 일들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런 경험들이 이제서는 많은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좋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면 위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 지 안다.”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기회다. 잘하면 좋은 것이고 안 좋아도 본전이다. 나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려고 한다.”
선수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어느 때가 가장 아쉽나
“1998년을 끝으로 해태 타이거즈가 사라지고 삼성으로 건너온 것이다. 삼성에 온 것이 문제였다기보다 그때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어야 했다. 그 때 내 나이 23살이었고 한창 공이 좋았다. 당시 메이저리그에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스타일이 흔치 않았다는 것까지 떠올리면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결국 내 꿈이나 선수인생을 따지면 두고두고 독이 됐다. 혹시 그때 진출했다면 마리아노 리베라처럼은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기록들을 세우지 않았을까 생각할때도 가끔 있다.(웃음)”
(1995년 해태에서 데뷔한 임창용은 불과 약관을 갓 넘긴 나이인 1996년 49경기서 7승7패 평균자책점 3.22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떠올랐다. 이후 1997년에는 무려 67경기에 등판, 14승8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이라는 원맨쇼를 펼쳤다. 이어 1998년에도 8승7패 34세이브 평균자책점 1.89의 대활약을 했다. 1999년 삼성 이적 이후에도 2년간 리그를 제압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임창용은 희비가 엇갈린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건 부모님이 몸을 잘 물려주신 덕분인 것 같다.(웃음) 가족들 중 남자들은 대부분 체형이 나랑 비슷하다. 나는 겨울 운동을 쉴 때도 살이 찌지 않는다. 유연성이나 타고난 운동신경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
(임창용의 말과는 달리 그와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 오승환은 “참 배울 점이 많고 자극이 된다. 저 나이에도 최상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는 형의 열정이 존경스럽다”며 혀를 내둘렀다.)
또 역시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인데, 결혼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나
(재빨리) “곧 할 것이다. 꼭 하겠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힘이 될 것 같다.
“사실 기사보다 댓글을 많이 보는 편이다. 거기서 나를 욕하는 분들도 있고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다. 욕이나 응원이나 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니까 고맙다. 오히려 비난을 받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쓴다. 멀리 있으면서 팬들의 마음에 많은 위안을 얻는다.”
앞으로 어떤 모습의 선수가 되고 싶은가. 팬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면
“메이저리그에 가서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일단은 내년 빅리그에서 계속 잔류하는 것이 목표다. 이제는 내가 던지는 모습을 팬들에게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다. 그게 나의 할 일 인 것 같다. 내가 계속 던지는 모습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잘한다면 열심히 계속해서 세이브를 쌓아가겠다.”
[one@maekyung.com]
괌 레오팔레스 리조트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린 임창용을 현지에서 18일 MK스포츠가 만났다.
다음은 임창용과의 일문일답(下편)
역대를 따져 봐도 손꼽히는 고령 루키였다.
“맞다. 아마 컵스 역사상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루키였을 것이다.(웃음) 그래도 나이가 있다고 그런지 루키 대접을 하지 않고 베테랑 대우를 해주더라. 사실 메이저리그로 콜업되고 나서 재밌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신인들의 통과의례인 ‘루키헤이징’이다. 어느 날 원정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에 들어오니 신인들의 라커룸에 여성 속옷 란제리가 나란히 걸려있더라. 순간 아찔했는데 다행히 나는 없었다. 당시 한 15명 정도가 란제리를 입고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이후에 호텔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 입혀놓더니 5분 쯤 전에는 아예 차에서 내려서 걸어오게 하더라. 우리 팀의 앤서니 리조 같은 특급 유망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그 모습을 웃으면서 쳐다보는 걸 보니, ‘LIM은 안 입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웃음)”
컵스의 분위기는 어땠나. 적응은 힘들지 않았나
“사실 하위권 전력임에도 분위기가 밝고 클럽하우스 분위기가 좋았다. 또 경기에 들어가면 1경기, 1경기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설령 그렇게 하고 난 이후에 지더라도 죄인처럼 처지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 좋았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즐거움이 야구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야구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하는 것이 전제다. 하지만 반드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즐기는 마음이 없이는 오랫동안 열정을 유지할 수 없다. 타자를 상대했을 때 어떻게 안타를 맞지 않고 삼진을 뺏을까, 어떻게 이 타자를 공략할까하는 그런 마음들이 재밌다고 느낄 때 다음 투구가 기대되고 또 그만큼 던질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들도 즐겁게 된다고 생각한다.”
유연함과 운동신경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선천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후천적인 노력 또한 많은 이들은 쉽게 잊고 있다. 사진(괌)=김영구 기자
경쟁은 자신이 있나 “컵스의 선수 구성이 애매한 부분은 있다. 만약 7회, 8회, 9회 등판하는 투수들이 모두 정해져 있다면 내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경쟁자들보다 좋은 투구를 해나가도록 준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치고 나가는 선수가 없다보니 이 유망주에게도 기회를 주고, 저 유망주에게도 기회를 주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기회가 줄어드는 감이 있다.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많은 상황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또 이번 스프링캠프 경쟁에서부터 이기는 수밖에 없다.”
통산 300세이브에 단 4세이브만이 남았다.
“아니다. 목표를 400세이브로 잡고 있다. 던지는데 몸 상태에 지장만 없다면 계속 타자들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 힘이 빠지면 요령으로라도 상대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알고 있다. 나이 많은 선수들은 구속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을 던질 수 있는 순간까지는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다.”
선수 생활 동안 잦은 부상과 ML 진출 실패, 거취문제 등이 겹쳤다. 어지간하면 좌절하거나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굴곡이 많았다. 그 경험들은 지금의 임창용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누구나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인생이 아닌가. 나도 여러 과거들을 있다보니 이제는 돌이켜 보면 그런 시기를 통해, 지금와서는 많은 일들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런 경험들이 이제서는 많은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좋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면 위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 지 안다.”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기회다. 잘하면 좋은 것이고 안 좋아도 본전이다. 나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려고 한다.”
선수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어느 때가 가장 아쉽나
“1998년을 끝으로 해태 타이거즈가 사라지고 삼성으로 건너온 것이다. 삼성에 온 것이 문제였다기보다 그때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어야 했다. 그 때 내 나이 23살이었고 한창 공이 좋았다. 당시 메이저리그에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스타일이 흔치 않았다는 것까지 떠올리면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결국 내 꿈이나 선수인생을 따지면 두고두고 독이 됐다. 혹시 그때 진출했다면 마리아노 리베라처럼은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기록들을 세우지 않았을까 생각할때도 가끔 있다.(웃음)”
(1995년 해태에서 데뷔한 임창용은 불과 약관을 갓 넘긴 나이인 1996년 49경기서 7승7패 평균자책점 3.22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떠올랐다. 이후 1997년에는 무려 67경기에 등판, 14승8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이라는 원맨쇼를 펼쳤다. 이어 1998년에도 8승7패 34세이브 평균자책점 1.89의 대활약을 했다. 1999년 삼성 이적 이후에도 2년간 리그를 제압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임창용은 희비가 엇갈린 선수 생활을 보냈다)
도전이 아닌 즐기는 야구. 임창용의 열정은 꺼지지 않았다. 사진(괌)=김영구 기자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150km가 넘는 뱀직구를 아직도 뿌릴 수 있나. “그건 부모님이 몸을 잘 물려주신 덕분인 것 같다.(웃음) 가족들 중 남자들은 대부분 체형이 나랑 비슷하다. 나는 겨울 운동을 쉴 때도 살이 찌지 않는다. 유연성이나 타고난 운동신경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
(임창용의 말과는 달리 그와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 오승환은 “참 배울 점이 많고 자극이 된다. 저 나이에도 최상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는 형의 열정이 존경스럽다”며 혀를 내둘렀다.)
또 역시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인데, 결혼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나
(재빨리) “곧 할 것이다. 꼭 하겠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힘이 될 것 같다.
“사실 기사보다 댓글을 많이 보는 편이다. 거기서 나를 욕하는 분들도 있고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다. 욕이나 응원이나 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니까 고맙다. 오히려 비난을 받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쓴다. 멀리 있으면서 팬들의 마음에 많은 위안을 얻는다.”
앞으로 어떤 모습의 선수가 되고 싶은가. 팬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면
“메이저리그에 가서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일단은 내년 빅리그에서 계속 잔류하는 것이 목표다. 이제는 내가 던지는 모습을 팬들에게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다. 그게 나의 할 일 인 것 같다. 내가 계속 던지는 모습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잘한다면 열심히 계속해서 세이브를 쌓아가겠다.”
[on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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