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할 말 없다.”
최근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가장 자주 꺼내든 말이다. 잇따른 음주사고 이후 소속팀 선수들의 잘못을 선수 관리를 못한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사죄한 한 마디다.
그런데 염 감독이 지난 15일 잠실 LG 트윈스와의 경기를 마친 뒤 또 “할 말 없다”고 했다. 이날 경기서 0-9로 완패하며 시즌 처음으로 6연패 수렁에 빠진 것에 대한 자책의 의미도 있었지만, 또 다른 속내도 숨어있는 듯 했다.
하지만 염 감독의 바람은 0-0으로 맞선 5회말 산산조각 났다. 믿었던 나이트가 올 시즌 최악투를 보이며 4⅔이닝 동안 만루 홈런을 포함해 9피안타(1홈런) 3볼넷 8실점(7자책)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나이트만 탓할 수 없는 엄청난 악재가 숨어있던 경기였다. 나이트가 무너진 것은 한 순간이었다. 5회말 2사 만루 위기에 몰린 나이트는 박용택을 상대로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박용택을 3루 땅볼로 유도한 것. 하지만 3루수 김민성이 2루로 던진 마지막 아웃카운트 공이 세이프 판정을 받으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김민성의 수비는 완벽했다. 어려운 타구를 다이빙캐치로 잡아내 2루수 서건창에게 정확하게 뿌렸다. 서건창도 완벽하게 2루 베이스를 밟고 잡아냈다. 1루 주자 오지환이 2루로 파고들었지만, 타이밍에서 한 박자 앞선 깔끔한 수비였다. 오심의 여지가 없는 수비였지만, 박근영 2루심은 아웃이 아닌 세이프 판정을 내렸다. 올 시즌 최악의 오심으로 기록될 판정이었다.
나이트는 심판의 판정에 거칠게 항의했다. 포수 허도환이 두 팔로 잡아서 진정을 시키기조차 힘들었다. 흥분을 하지 않는 나이트였기 때문에 평소 볼 수 없었던 모습. 넥센 구단 관계자는 “나이트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나이트는 오심으로 날린 1실점을 삭이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경기에 임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만루 홈런과 8실점이었다. 나이트는 오심에 평정심을 잃고 와르르 무너지며 5회를 버티지 못했다. 나이트도 고개를 숙인 채 마운드를 내려갔고, 이 모습을 본 염 감독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넥센은 이날 경기를 최악의 오심으로 날렸지만, 경기가 끝난 이후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넥센 구단 관계자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시즌을 길게 봐야 한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 뒤 “다만 명승부였던 경기가 이렇게 망가져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또 우리는 연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아쉽다”고 혀만 찼다.
넥센은 최근 그라운드 안팎에서 물의의를 일으킨 팀이다. 특히 투수 김병현의 강판 후 공 투척 사건은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행동으로 규정해 징계를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넥센은 이번 오심에 대해서 더 큰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경기 때문에 남은 경기서 또 손해를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최근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더 말을 못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보복성 판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였다. 대신 이 관계자는 “우리 감독님이 이러다 쓰러지실까봐 정말 걱정이다”라며 진심어린 걱정의 말을 남겼다.
이날 염 감독은 고개를 숙인 채 “할 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오심과 관련해서는 고개를 떳떳이 들고 할 말은 해야 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심판부에 들릴 수 있도록.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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