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인류
인류와 가장 가까운 동물을 말하라고 하면 많은 분이 개를 꼽을 겁니다. 개와 인류의 공생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대략 기원전 1만 년에서 1만 5천 년 전부터 함께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도 개는 친숙한 존재입니다. 날이 풀린 요즘 거리나 공원에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이렇게 반려견이 개의 주류를 이룬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개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키우는 존재였습니다. 집을 지키는 경비견, 사냥감을 물어오는 사냥개, 양이나 소를 모는 목양견으로 우리 옆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개들은 여러 분야에서 특별한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며 하는 일도 다양해졌죠. 이번 재난백서에서는 안전을 지켜주는 특수목적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튀르키예에서 구조 활동을 하다 발을 다친 토백이 (연합뉴스)
재난현장을 누비는 구조견
119구조견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재난구조견과 산악구조견, 수난탐지견, 화재탐지견 그리고 사체탐지견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보다 약 1만 배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서 인명을 구조하거나 시신을 찾습니다.
전국의 119구조견은 2023년 기준 35마리입니다. 구조견은 수백 번에 걸친 수색과 복종, 장애물 통과 훈련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는데, 이들의 활약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2023년 6월까지 2,653번을 출동해 174명의 시민과 시신을 찾았습니다.
119구조견 가운데 가장 익숙한 개는 재난구조견입니다. 재난구조견은 화재나 지진 등으로 무너진 건물이나 산사태 현장에서 구조 대상자를 찾습니다. 지난해 튀르키예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자 우리나라에서도 구조대원과 함께 구조견이 급파됐습니다. 구조견은 위험한 현장을 씩씩하게 돌아다니며 건물 속에서 시민들을 구해냈죠. 구조견 토백이는 발을 다친 와중에도 현장을 누비는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배를 타고 있는 수난탐지견 규리 (연합뉴스)
물과 불의 냄새를 맡다
수난탐지견을 들어본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들은 수난현장에서 수면 위에 남아 있는 체취를 따라가 실종자나 시신을 찾는 역할을 합니다. 수난탐지견을 키우려면 10개월 동안 열심히 훈련해야 하는데, 특히 이들은 배 위에서 냄새를 맡는 경우가 많아 흔들리는 배에서도 균형을 잘 잡아야 하고 물을 무서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20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타고 있던 유람선이 침몰했습니다. 배가 워낙 급작스럽게 뒤집힌 탓에 대피할 시간이 없었고, 우리 국민 2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독일 구조팀은 수난탐지견을 투입했는데, 우리나라엔 이런 구조견이 없었습니다. 수상 재난에 특화된 구조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지금은 우리나라도 수난탐지견을 양성해 현장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받는 화재탐지견 (소방청)
119구조견은 사람만 찾지 않습니다. 화재탐지견은 불이 난 현장에서 화재가 시작된 원인을 찾습니다. 특히 방화가 의심되는 현장에 투입돼 방화에 사용된 미세한 유류 성분을 찾는 데 특화돼있습니다.그런데 정말로 그냥 불이 난 냄새와 인화성 물질로 불을 낸 냄새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훈련을 해봤습니다. 하나의 상자에는 인화성 물질로 불을 낸 탄화물을 넣고, 다른 상자들에는 인화성 물질을 이용하지 않은 탄화물을 넣었습니다. 몇 주간 훈련하자 화재탐지견은 정확히 인화성 물질에만 반응했다고 합니다.
은퇴하고 새 주인을 만난 아롱이 (연합뉴스)
귀여운 개 세상을 구했다
올해 초 구조견 아롱이가 은퇴했습니다. 2014년에 태어난 아롱이는 2017년부터 경기도북부특수대응단에 배치돼 6년 동안 300번이 넘게 출동을 했습니다. 여러 현장에서 4명의 생존자를 구하고 5명의 사망자를 찾으며 멋진 활약을 펼쳤죠. 지금 아롱이는 새 주인을 만나 강원도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119구조견은 열심히 훈련을 받고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가정으로 입양돼 새로운 세상과 만나겠죠. 구조견이 행복하게 은퇴 후의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구했으니까요.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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