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초과 상태에 놓인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를 담보로 삼아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고 이를 기존 채무 변제에 사용했다면 다른 채권자들의 이익을 해하는 행위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한방병원의 채권자 A씨가 B금융기관을 상대로 낸 사해행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한방병원을 운영하는 한의사 C씨는 2015년 9월 B금융기관에서 1억원을 대출받는 대신 한방병원이 건보공단에 대해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할 예정인 요양급여채권을 양도하는 '메디컬 론'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 따라 건보공단은 대출이 이뤄진 해 9월부터 2017년 5월까지 127회에 걸쳐 6억3300만원을 B금융기관에 입금했다. B금융기관은 매월 원리금을 제외한 금액을 C씨 계좌로 입금했다. C씨는 대출받은 1억원을 다른 금융기관의 채무를 변제받는 데 사용했다.
문제는 C씨가 B금융기관과 대출계약을 맺을 당시 이미 채무 초과 상태였다는 점이다. C씨의 계약 당시 재산은 6000만원 상당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과 1억원 상당의 의료기기, 그리고 건보공단에 대한 채권이 사실상 전부였던 한편 인테리어 공사대금 3억8000만원, 대출금채무 2억원을 지고 있는 등 부채가 자산보다 훨씬 많은 상태였다.
원고 A씨는 병원이 자신에게는 2억7000만여 원만을 변제한 상태에서 다른 채권자에게 건보공단 보험급여비용을 채권으로 회수하게 해준 것은 사해행위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한방병원과 B금융기관 사이에 체결된 6억3300만여 원짜리 채권양도양수계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병원이 금융기관에 넘긴 채권은 채권자들의 공동담보에 해당하므로 특정 채권자에게 먼저 채권을 회수할 기회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와 맺은 계약은 병원의 채무 초과 상태를 더욱 심화시키고, 피고에게만 다른 채권자에 우선해 자신의 채권을 회수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일반 채권자들을 해하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며 "병원 측의 사해의사가 인정되며, 수익자인 피고의 악의도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2심도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오류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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