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9월 국내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로 조성된 구미국가산업단지가 50주년을 맞은 올해 역설적이게도 준공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발표한 전국 국가산단 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구미국가산단의 누적 수출액이 135억56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88억5000만달러)에 비해 28%나 급감했다. 2017년 215억 6700만달러 보다는 37.1%나 줄어든 셈이다. 구미산단이 끝모를 추락을 하면서 대한민국 IT의 심장 구실을 하며 각광받던 구미 지역경제도 몰락의 길을 걷고있다. 문닫는 공장이 속출하고 상권붕괴, 부동산값 폭락, 인구 이탈 등 도시의 존립이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국가산업단지 4공단. 액정표시장치(LCD) TV를 만들던 A업체 공장 부근에는 적막감만 흘렀다. 1만㎡ 땅에 건평 5300㎡ 규모로 지어진 작지 않은 공장이지만 지난해 8월 폐업한 뒤 지금까지 새로운 주인이 나서지 않아서다. 공장 출입구 경비실에 경비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경비원은 "한때 꽤 잘나갔던 업체였는데 LCD 산업이 쇠락하면서 결국 버티지 못해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구미 4공단에는 이 곳 외에도 문을 닫은 공장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생산라인을 돌리고 있는 업체들이라 해도 편치 않다. 폐업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걱정이 태산이다. 휴대폰 부품을 제조하는 한 업체 직원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직원 수가 200명을 넘었다"면서 "4~5년 전부터 일감이 급감해 지금은 100명으로 직원이 줄었고 이마저도 더 줄여야 할 형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1969년 착공해 1973년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산업단지인 구미 1공단. 50년이나 된 역사 깊은 곳이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때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며 수출 전진기지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이곳저곳 낡은 공장 건물만 즐비하다. 공단 안으로 들어가니 5층짜리 사원 아파트 한 동은 폐허가 된 채 텅 비어 있다. 아파트 경비실은 유리창문이 깨친 채 방치됐고 화단도 성인 허리만큼 풀이 자라 풀밭으로 변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을씨년스럽다.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업체에서 팔려고 해도 매각이 안 돼 저렇게 5~6년째 방치돼 있다"고 전했다. 공단 내 전주와 외벽에 붙은 수많은 공장의 '매매·임대' 현수막들은 구미 공단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국가산업단지 1공단에 위치한 한 업체의 사원 아파트가 텅빈채 폐가로 방치되고 있다. [구미 = 우성덕 기자]
'낙동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한때 한국 정보기술(IT)산업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구미가 끝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구미국가산단(1~4단지) 내 2417개 업체의 평균 가동률은 70.4%로 2016년 9월(83.9%)에 비해 무려 13.5%포인트 낮아졌다. 공장 가동률은 같은 달 기준으로 2017년 68.9%를 기록한 후 2018년(66.8%) 소폭 오르긴 했지만 10년 전인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09년(88.4%)과 비교해도 18%포인트나 떨어졌다. 특히 같은 기간 구미국가산단의 공장 가동률은 70.4%로 전월(76.3%) 대비 무려 5.9%나 감소했다. 이는 전국 국가산단 가운데 가장 큰 감소폭으로 전국 평균(76.7%)에도 크게 못 미쳤다.
영세 기업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올 9월 기준 50인 미만인 영세 업체 가동률은 33.5%에 불과하다. 50인 미만 영세 업체 가동률은 3년 전인 2016년만 하더라도 77.6%에 달했지만 2017년 42.1%로 추락하는 등 매년 감소했다. 구미공단 근로자도 2017년 같은 기간 9만1711명에 달했지만 201지난해 8만 8095명으로 감소했고 올해도 3000여명 가까이 줄면서 8만 5146명에 그쳤다.
구미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의 주력기업 생산 공장이 대거 역외로 이전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삼성전자는 2010년 구미공장에서 생산하는 휴대전화 물량을 베트남으로 대거 이전했고 LG디스플레이도 2000년대 중반부터 생산 거점을 구미에서 경기도 파주로 옮겨갔다. 삼성전자 구미공장의 2000년대 중반까지 전체 휴대폰 생산량의 70% 가량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5%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미에는 '대기업 엑소더스' 공포가 번지고있다. 지난 상반기에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가 구미에서 경기도 수원으로 본사를 이전했고 LG디스플레이 구미공장 철수설마저 나돌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 그룹 계열인 아사히글라스 한국법인인 '아사히피디글라스한국'은 내년 1월 철수를 결정해둔 상태다. 대기업들이 잇달아 이탈 대열에 합류할 조짐을 보이면서 구미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의 1~3차 협력업체들이 같이 자리잡아 떠받쳤던 구미 경제에서 대기업이 떠난 자리를 메꿀 대안이 없어서다. 취약한 자생 중소기업 기반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를 강구하기에도 많이 늦었다는 뼈아픈 지적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국가산업단지 1공단에 위치한 한 공장의 경계 철망에 공장 매매와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구미 = 우성덕 기자]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국가산업단지 1공단의 한 가건물 외벽에 공장 매매와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과 전단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구미 = 우성덕 기자]
지난 7월 LG화학이 구미 5공단에 50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양극재 생산 공장을 짓는 '구미형 일자리'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론 역부족이다. 설상가상 이 마저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현재 '지역형 일자리'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행정 재정 지원을 담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국회 계류 중인 만큼 올해 안에 관련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공장착공은 당초 계획됐던 내년 상반기보다 6개월 이상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부동산도 직격탄을 맞았다. 구미시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분양된 6548 가구 가운데 미분양 가구는 11% 가량인 731가구다. 이 가운데 악성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이 179가구로 24%나 차지한다. 구미는 2017년 9월부터 내년 3월까지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선정된 상태다.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아파트 값도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공단주변의 원룸은 대부분 비어 있다. 구미 최대 번화가로 젊은 근로자들이 많이사는 인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2년 전 13억이 넘던 원룸 건물이 지금은 11억원에도 안 팔린다"며 "임대도 안 된다"고 했다. 근로자들이 빠져 나가면서 상권도 사라졌다. 인동의 상가 월세는 한때 300만원에 달했지만 현재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각종 상가와 식당이 밀집해 밤마다 인파가 붐비던 구미도심 문화로(일명 '2번 도로')는 초저녁만 되면 불꺼진 도시로 변한다.
[구미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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