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56)가 모방범죄로 결론 난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한 가운데 경찰이 이춘재로부터 범행 당시 실제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8차 사건 당시 범죄 혐의점을 못찾아 검찰에 송치하지 않았던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재수사중인 반기수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장은 10일 브리핑을 열어 "이춘재 대면조사에서 의미있는 진술이 나왔다"고 밝혔다.
"8차 사건 당시 범인 만이 알 수 있는 진술이 나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구체적 진술 내용에 대해서는 "범인 만이 알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을 얻어내기 위해 지금 단계에서는 말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수사팀 관계자를 상대로 수사의 과오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혀 이미 이춘재를 진범으로 확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경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반기수 본부장은 "용의자 자백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수사, 당시 수사의 과오를 확인하는 조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며 "당시 수사관계자들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으며 이는 용의자의 자백이 맞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실형까지 살다 출소한 윤모씨(당시 22세)는 최근 경찰과 2차례 만난 자리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면서 범행을 거듭 부인했다. 이 같은 윤씨 주장에 대해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은 "국과수 감정결과(방사성 동위원소 감정)가 명확한 상황에서 특별히 고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재수사팀에 했다.
반 본부장은 "윤씨가 고문했다고 주장하는 형사들은 당시 수사팀에 있었으며 이들 포함 당시 수사팀원들은 모두 퇴직했다"며 "쪼그려뛰기를 시키거나 잠을 재우지 않았다는 윤씨의 주장에 대한 조사는 아직 안됐다"고 전했다. 윤씨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돼도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반 본부장은 덧붙였다.
경찰은 8차 사건 당시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물은 모두 폐기됐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 방에서 나온 클로버 종류의 풀 1개와 8차 사건과 유사한 수법(문 창호지 구멍뚫기)의 인근 절도 현장에서 발견한 창호지·벽지 감정을 이번주 초 국과수에 의뢰했다. 반 본부장은 "이들 증거물은 당시 국과수에서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나 검찰에 송치하지도 않았던 것"이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감정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8차 사건 당시 이춘재가 유력 용의선상에서 빠진 것은 다른 사건때처럼 혈액형 때문이었다. 당시 경찰은 8차 피해자 방에서 확보한 체모 8점을 국과수에 의뢰해 얻은 혈액형 B형, 체모 생김새 등 형태학적 특성을 용의자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경찰은 8차 사건 이후 이춘재의 음모를 2차례 확보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지만 첫번째 음모에서는 혈액형 B형, 형태적 소견은 상이하다는 결과가, 두번째 음모에서는 혈액형이 O형으로 나와 방사성동위원소 분석대상에서 제외됐다. 반 본부장은 "당시 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대해 국과수에 재검증을 요청해 놓았다"고 밝혔다.
[수원 =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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