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와 조기대선이 치러진 지난해는 한국 언론사에 팩트체크라는 화두가 제대로 던져진 한해였습니다.
탄핵 국면과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제기되는 의혹, 가짜뉴스나 허위로 의심되는 정보에 대한 사실과 거짓 여부를 판단해 주는 '팩트체크식 보도'가 잇따랐었죠.
사실 이런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언론의 주된 흐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팩트체커들의 대표적인 연례 국제회의인 '글로벌 팩트5'(6월 20~22일, 이탈리아 로마)'에는 세계 56개 나라에서 225명의 기자와 팩트체커들이 참석했습니다.
2014년 영국 런던에서 첫 번째 회의가 열릴 때 참가자 수는 겨우 40여 명이었지만, 5회째인 올해 6배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팩트체크의 열기가 뜨거워진 겁니다.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으로 저는 한국 대표 10명에 뽑혀 이번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요. 이곳에서 만난 각국 팩트체커들의 고민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습니다.
■ 영상까지 편집…진화하는 가짜뉴스
이번 행사에서 안도(?)했던 부분은 가짜뉴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가짜뉴스 등 사이버 범죄사범이 55% 급등하는 등 국내 가짜뉴스 범람은 심각한 수준인데, 이곳에서 들은 외국의 가짜뉴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사진이나 영상을 변조해서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 사람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얼굴과 실시간으로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까지 가짜뉴스에 쓰였는데, 쉽게 말하면 A라는 사람이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을 직접 한 것처럼 영상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거죠.
2년 전쯤 북한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영상을 편집해서 가짜뉴스를 퍼뜨린 걸 경찰이 잡아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조악한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신기술이었습니다.
/사진=MBN
■ 팩트체커들의 선택은 '협업'
하지만 이런 가짜뉴스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겠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가짜뉴스를 판별하기 위해 팩트체커들이 우선 택한 건 '협업'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의 보도채널 '프랑스24'가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아마추어 회원들과 함께 만든 네트워크인 '옵저버'입니다.
검증이 필요한 사진이나 영상을 정해진 곳에 올리면, 5천 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이게 조작된 것인지 일차적으로 검증해주는 겁니다.
옵저버가 이런 회원들을 모집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10여 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팩트체크가 나아가야 할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 아직 먼 '팩트체크 자동화'…각 국간 소통이 우선
또 하나의 방패는 '자동화'였습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어떤 보도나 주장에 대해 자동적으로 팩트체킹을 하자는 건데, 궁극적으로 구현해야 할 기술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실제로 영국의 풀팩트, 아르헨티나의 체케아도, 브라질의 아우스 파투스 등 팩트체크 매체들이 자신들의 자동화 모델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수년간 쌓아온 자료를 데이터베이스(DB)화한 뒤 비교하는 방식이어서 실현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게 역시 문제였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팩트체커들은 서로 소통과 협력만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쉬는 시간이면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고 각자의 환경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특히 그간 협력이 거의 없었던 일본, 필리핀, 태국 등의 아시아의 팩트체커들이 DB를 공유하자고 제안하는 등 아시아권이 뭉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MBN
MBN이 지난 2월부터 '사실확인' 코너를 만들어 팩트체크에 나서고 있는데요.
저희가 제기한 궁금증을 다른 나라에서 검증하고, 다른 나라의 가짜뉴스를 이곳에서 판별하는 시대, 팩트체커라면 상상해 볼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아닐까요.
이번 회의를 주최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의 알렉시오스 멘잘리스 국장이 한 말로 이번 글의 마지막을 갈음할까 합니다.
"우리의 적은 정부가 아닌 가짜뉴스다. 우리는 충분히 팩트체킹을 하고 있는 것인가?"
[ 김한준 기자 / beremoth@hanmail.net ]
◆ 김한준 기자는?
=> 현재 경찰청 출입기자.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친 뒤 2016년 4월부턴 사회부 사건팀에서 경찰청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를 비난하면서 과거를 찬미하는 나쁜 습관을 버리기 위해 모든 사안을 밝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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