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결국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판사들 뒷조사로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이 의혹 탓에 사법부는 지난 1년간 갈등과 혼란을 겪었지만 실체는 없었던 것으로 최종 조사됐다. 지난해 진상조사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조사 결과와도 같다.
다만 행정처가 2015년 2월 9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서울고법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청와대 문의를 받아 재판부 동향 파악을 시도했다는 정황이 나타났다는 점이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2일 이같은 추가조사 결과를 정리해 법원 내부전산망에 올렸다. 추가조사 결과 자료는 19쪽 요약본과 38쪽 원본, 행정처 문서 실제 내용이 게재된 54쪽 별지로 구성됐다.
추가조사위는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는 의혹의 실체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첫 진상조사와 공직자윤리위 조사, 김명수 대법원장(58?사법연수원 15기)이 취임 뒤 지시한 추가조사 모두 블랙리스트 의혹 때문이었다.
추가조사위는 "행정처는 그동안 '사법 불신 대응' 등을 이유로 공식·비공식 방법을 모두 동원해 법원의 운영과 법관의 업무, 그 이외의 영역에 관해서도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날 오후 "블랙리스트 개념에 논란이 있어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탰다.
추가조사 결과 가운데, 행정처가 당시 청와대 문의로 원 전 원장 재판 현황 파악을 시도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결과적으론 어렵다고 답했고 실제 아무 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조사보고서 별지(51쪽)를 보면, "BH(청와대) 최대 관심 현안 → 선고 전 '항소기각'을 기대하면서 법무비서관을 통해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라는 표현이 있다. 이에 대해 행정처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우회적 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리고, 재판 결과에 관해서는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 행정처도 불안해하고 있는 입장임'을 알림"이라는 답변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안엔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추가조사위는 보고서 요약본(18쪽)에 "당시 심의관(실무 담당자)은 해당 문건을 작성한 적 없고 본적도 없으며 문건의 양식도 행정처 양식이 아니라고 진술"이라고 기록해 관련 문건의 신빙성을 두고 또 다른 논란도 예상된다. 당시 서울고법 형사6부(당시 부장판사 김상환)는 1심의 집행유예를 뒤집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는 행정처와 청와대가 일선 법원 판결 등 현안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점 때문에 사법부 독립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행정처가 일선 법관 회의체인 단독판사회의에 대해 견제를 시도하고, 법원 내 특정 학술단체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정보를 수집한 문건 등이 나타나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개선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게 됐다.
판사들 반응은 엇갈렸다. 지방의 한 고등부장은 "블랙리스트가 없는 건 다행이지만 사법행정권 남용이 있었다면 바로 잡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한 부장판사는 "연구회 안에서도 시각이 다양하다"며 "사법행정권 오남용이 있었다면 앞으로 개선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판사도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 판사는 "보고서 요약본과 원본, 별지 내용 등이 조금씩 달라서 추가조사가 얼마나 객관적이었느냐는 점도 짚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추가조사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2월 정기인사 때 새로 발령받을 행정처 판사들부터 각급 법원 판사들과 교류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김 대법원장의 입장도 관심사다. 그가 그간의 논란과 갈등을 더 키울지, 검찰 또는 특별검사의 수사를 불러올지 등을 두고 판사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행정처 출신의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행정처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수도권의 한 법원장급 인사는 "앞으로 김 대법원장과 그를 지지하는 판사들의 행보에 따라 본격 수사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채종원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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