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59·사법연수원 15기)이 법관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중립적인 기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다만 사전에 법원 내부적으로 기구 설립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향후 설립 과정에서 기구 성격 및 구성원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2일 시무식에서 "법관은 어떠한 외풍과 압력에도 흔들림 없이 오직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법관 독립)를 위해 법원 내부의 입장 뿐 아니라 외부의 객관적 시각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중립적인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또 "지난해 초반 일었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이 법관의 독립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다시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 추가조사위가 살펴보고 있는 '사법부블랙리스트 의혹'을 법관 독립을 침해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하면서 그 대안으로 중립적 기구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법관 독립'은 김 대법원장이 후보자 시절부터 꾸준히 공개석상에서 거론한 만큼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이날 외부 인사를 포함한 중립적인 성격의 기구를 만들겠다고 밝힌 점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 설왕설래가 벌어지고 있다 . 일단 김 대법원장이 기구가 필요하다는 방향성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조직 구성을 별도로 지시한 것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시무식 현장에 있던 법관들도 이 내용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대법원 관계자도 "아직 구체적 출범 일정 등은 잡힌 것은 없다"고 밝혔다.
특히 법원행정처 내부에서도 중립기구 관련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구상이 어떤 식으로 최종 연설문에 포함됐는지를 두고 의아해 하는 분위기다. 재경지역의 한 판사는 "어떤 기구를 하나 만들기 위해 정책실은 정책을, 기조실은 내규 수정을, 지원실은 지원업무를 짜는 등 행정처 전반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숙제만 덩그러니 내려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판사는 "중립 기구는 처음 들어보는 것으로 향후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본격적으로 중립기구 설립 관련 논의가 진행되면 이 기구가 실제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건지, 외부 인사로는 누가 들어올 것인지를 놓고 사법부 내부에서 또다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58· 경기 남양주병)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 조사와 관련해 김 대법원장과 추가조사위원회 소속 판사 7명을 비밀침해,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혐의로 지난달 28일 고발한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이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돼 대법원 운영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기 전에 국회의원에게 고발당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추가조사위가 영장주의를 무시하고 행정처 PC를 조사하는데 대해 불법 논란이 거센 상황이라 대법원장에게 실제로 책임을 물을지도 관심이다.
앞서 주 의원은 "하드디스크 무단 복제 및 외부반출, 저장문서 조사·열람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형법상 비밀침해와 직권남용, 직무유기를 구성하는 중대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채종원 기자 / 송광섭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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