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를 받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70)이 13일 검찰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이날 이 전 원장을 국정원장 재직 당시 수십억 원 규모의 국정원 특활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이 전 원장은 2014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8개월 동안 국정원을 맡았다. 이후 박 전 대통령(65·구속기소)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 전 원장은 이날 오전 9시15분께 검찰 청사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에 지원된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위상이 많이 추락한 국정원 직원들에 이 문제로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아는 대로 소상하게 진술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고 조사실로 향했다.
검찰은 남재준 전 원장(73) 시절 월 5000만원이었던 상납액이 후임자인 이병기 전 원장을 거치면서 매달 1억원으로 늘어난 경위 등에 대해 집중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증액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도 물어봤다.
앞서 남 전 원장은 지난 9일 검찰 조사에서 "취임 이후 청와대의 요구를 받아 매달 5000만원씩 특활비를 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이병호 전 원장(77)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며 "청와대 요구에 따라 특활비를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상납 의혹의 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검찰은 이미 박 전 대통령 최측근인 이재만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51)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51)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당시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또 '비선실세' 최순실 씨(61·구속기소)의 비서 역할을 한 이영선 전 대통령 행정관(38) 등을 불러 40억여 원의 용처를 추적해왔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을 (국정원 특활비 상납의) 수수자로 이미 사실상 피의자로 적시해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본인 재판마저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조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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