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보이콧'을 선언하며 변호인단이 전원 사퇴한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기소)에 대해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 5명을 선임했다. 지난 19일 국선변호인 선정 절차에 들어간 지 6일 만이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국선변호인으로 6~31년차 법조 경력과 본인의 희망 여부 등을 고려해 직권으로 5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6일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아온 유영하 변호사(55·사법연수원 24기) 등 7명이 구속영장 추가 발부에 반발해 전원 사임한 데 대한 후속 조치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반드시 변호인을 선임해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필요적 국선변호 사건'이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 구속 상태이면서 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에 처해질 수 있는 혐의로 기소된 경우에는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여러 명의 국선변호인을 배정받게 됐다.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원칙적으로 국선변호인은 피고인마다 1명을 선정하지만, 필요에 따라 여러 명도 가능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수사 및 공판 기록이 12만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어서 원활환 재판 진행을 위해 여러 명을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국선변호인 5명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 등은 박 전 대통령 재판이 다시 열릴 때까지는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재판부는 "국선변호인 선정에 따른 활동은 본연의 공적 임무를 정상적으로 담당하는 것인데도, 과도한 '신상털기'나 불필요한 오해 등으로 인해 충실한 재판 준비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선변호인 선정이 완료되면서, 지난 19일 박 전 대통령이 건강상 이유를 들어 재판에 불출석한 후 '휴업' 상태인 공판은 이르면 11월 중순께 재개될 전망이다. 이미 6개월에 걸쳐 81회 공판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새롭게 선정된 변호인단이 공판·수사 기록을 복사·검토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 삼성 관련 뇌물 수수 △ 롯데·SK 관련 제3자뇌물 △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모금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으로 다양해 변호인 별로 사건을 나눠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최순실 씨(61·구속기소)에 대한 공무상기밀누설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호성 전 대통령 제1부속비서관(48)의 공판을 5개월 만에 다시 열고 다음달 15일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차은택 씨(48·구속기소) 등의 1심 판결도 다음달 22일 내릴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 4~5월 사실상 모든 심리를 마치고도 공범인 박 전 대통령, 최씨의 사건 경과를 보기 위해 5개월여 추가 구속된 상태였다. 재판부는 이들의 2차 구속만기가 다음달 19일, 26일로 임박한 점을 고려해 먼저 선고를 내리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 대한 유·무죄 및 양형 판단은 향후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1심 선고와도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앞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등 공범과 하나의 판결을 내리겠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이날 검찰은 정 전 비서관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정 전 비서관은 최후진술에서 7분여 동안 담담하게 소회를 밝혔다. 그는 "나라와 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게 전혀 알지도 못했던 최씨의 행동들과 연계돼 이 상황까지 오게 됐다"며 "정말 통탄스럽고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 또한 운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우리 정치사회에 박 전 대통령 만큼 비극적인 사람이 또 있겠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며 "좀더 잘 모시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의 혐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백하면서도 "(최씨에게 문건을 보내고 의견을 들은 일이) 특별히 잘못 됐다든가 부당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통령이 자신의 지인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일은 통치행위의 일환이고, 과거의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도 흔히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차씨에 대한 결심 공판을 다음달 1일 열 예정이다. 이날은 차씨와 함께 강요미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의 결심을 열었고, 검찰은 송 전 원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7000만원 등을 구형했다. 송 전 원장은 차 전 단장·최씨와 함께 포스코 계열 광고사를 인수하려던 중소 광고업체의 지분을 빼앗으려 한 혐의(강요미수)와 개인 비리 등으로 지난해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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