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광채그룹, 울릉도 앞바다서 침몰한 '보물선' 돈스코이함 인양 추진 '이목 집중'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선박의 인양 작업이 추진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21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건설업체 신일광채그룹은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드미트리 돈스코이함' 인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돈스코이함은 해양수산부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 실존하는 보물선이다. 반드시 보물선 돈스코이함을 인양해 세상에 그 존재를 보여 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업체는 아예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을 회사의 비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일광채그룹 측은 '돈스코이호는 99년 동아그룹이 사업비 70억원 중 27억원을 들여 탐사해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했다'며 '금괴와 금화가 없다면 당시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하지도, 주장할 이유도 없었다. 금괴와 금화가 진짜 존재하기 때문에 소유권을 주장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돈스코이호 인양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일본은 1916년 처음으로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을 시작한 후 수십년간 도전해왔습니다.
국내에선 81년 도진실업이라는 회사가 돈스코이호 인양을 시도한 것이 최초입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한계가 있어 돈스코이호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어 인양 사업에 뛰어든 곳은 동아건설로 쓰러져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인양 사업에 나섰고, 보물선 실체가 확인됐다고 알려지면서 당시 동아건설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라 불리는 이 선박은 6200t급 순양함으로, 현재 가치로 150조원으로 추정되는 금화 및 금괴 5천 상자와 함께 침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선박은 러시아 전쟁영웅 드미트리 돈스코이(1350~1389) 대공의 이름을 땄습니다.
이 배는 1905년 5월 29일 일본 함대의 포위를 뚫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다 울릉도 앞바다 70㎞ 해상에서 다시 포위됐습니다.
당시 돈스코이함 함장은 배를 일본 해군에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울릉도 동쪽 앞바다로 최대한 배를 이동시킨 뒤 160여 명의 선원에게 해변으로 가라고 명령하고 배수판을 열어 배를 고의로 침몰시켰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선박의 인양 작업이 추진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21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건설업체 신일광채그룹은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드미트리 돈스코이함' 인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돈스코이함은 해양수산부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 실존하는 보물선이다. 반드시 보물선 돈스코이함을 인양해 세상에 그 존재를 보여 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업체는 아예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을 회사의 비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일광채그룹 측은 '돈스코이호는 99년 동아그룹이 사업비 70억원 중 27억원을 들여 탐사해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했다'며 '금괴와 금화가 없다면 당시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하지도, 주장할 이유도 없었다. 금괴와 금화가 진짜 존재하기 때문에 소유권을 주장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돈스코이호 인양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일본은 1916년 처음으로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을 시작한 후 수십년간 도전해왔습니다.
국내에선 81년 도진실업이라는 회사가 돈스코이호 인양을 시도한 것이 최초입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한계가 있어 돈스코이호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어 인양 사업에 뛰어든 곳은 동아건설로 쓰러져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인양 사업에 나섰고, 보물선 실체가 확인됐다고 알려지면서 당시 동아건설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라 불리는 이 선박은 6200t급 순양함으로, 현재 가치로 150조원으로 추정되는 금화 및 금괴 5천 상자와 함께 침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선박은 러시아 전쟁영웅 드미트리 돈스코이(1350~1389) 대공의 이름을 땄습니다.
이 배는 1905년 5월 29일 일본 함대의 포위를 뚫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다 울릉도 앞바다 70㎞ 해상에서 다시 포위됐습니다.
당시 돈스코이함 함장은 배를 일본 해군에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울릉도 동쪽 앞바다로 최대한 배를 이동시킨 뒤 160여 명의 선원에게 해변으로 가라고 명령하고 배수판을 열어 배를 고의로 침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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