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검찰의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자살방조죄 누명을 썼다가 지난 2015년 24년 만에 재심 무죄 판결을 받았던 강기훈 씨(54)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판사 김춘호)는 당시 유서 필적을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인 김 모씨와 국가가 강씨 및 그의 부인·자녀·형제에게 총 6억86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앞서 강씨는 1991년 5월 노태우정권 퇴진을 요구하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동료 고(故)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분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 3년이 확정돼 옥살이를 했다. 이후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가 "유서는 김씨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심을 권고해 2015년에야 무죄가 확정됐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의 허위 필적 감정 결과가 수사와 재판에서 핵심 증거로 쓰여 강씨가 3년 이상 구금됐다"며 "판결 이후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고통받았을 거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강씨를 수사했던 검사 2명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강압적 수사가 있었다 해도 20여 년 전의 일이라 민법상 '소멸시효' 10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강씨를 대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송상교 변호사(45·사법연수원 34기)는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나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사 사건에서 여태까지 법원이 형성해온 소멸시효 관련 법리마저도 소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수사 틀 안에서 움직였던 국과수 감정인의 책임은 인정하면서, 사건 조작을 전체적으로 지휘·진행했던 검사 당사자의 책임은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또 "강씨가 재심 무죄 판결을 받고 제일 먼저 했던 말이 '당시 가해자들이 진실되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면서 "그 누구도 자기 책임을 얘기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2015년 11월 강씨와 가족들은 국가와 김씨뿐 아니라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이던 강신욱 전 부장검사(73·사법시험 9회)와 신상규 전 주임검사(66·11기)가 가혹행위로 강씨의 인권을 유린하고 주요 증거를 은폐·왜곡했다며 총 31억원대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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