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학교 공학관에서 표적테러로 의심되는 폭발물 사고가 발생해 교수 한명이 부상을 입었다. 누군가 일부러 갖다 놓은 쇼핑백을 열자 순간적으로 백이 터졌다. 백 안에는 커피 텀블러로 만든 사제폭탄이 들어있었다. 지난해 오패산 총기 경찰살해범 성병대가 사제폭탄까지 제조했던 것으로 밝혀진 데 이어 개인을 대상으로 한 사제폭탄 테러까지 일어나자 '한국도 더 이상 테러청정국이 아니다'는 경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경찰과 연세대학교 측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연세대 제1공학관 4층에 있는 기계공학과 김모 연구실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로 김 교수는 목, 가슴, 손, 오른팔 등에 화상을 입었다. 김 교수는 '연구실 출입문에 놓인 쇼핑백을 들고 방에 들어가 열어보니 갑자기 폭발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나온 위험성 폭발물 개척팀(EHCT), 경찰 폭발물처리반(EOD), 과학수사팀 등이 즉각 출동해 현장을 통제하고 감식 작업을 벌였다.
목격자들은 "택배를 열었는데 갑자기 폭발했다. 작은 나사들이 튀어나왔다. 테러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폭발을 일으킨 택배용 종이박스 안에는 커피전문점에서 판매하는 텀블러로 만든 사제폭탄이 들어있었다.
이 폭발물은 '조악'하게 만들어졌지만 뇌관과 기폭장치, 화약 등 소위 '못폭탄'으로서 기본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못폭탄'은 최근 맨체스터 자폭 테러에 사용됐고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IS가 주로 사용하는 사제폭탄이다. 압력밥솥, 여행용가방, 텀블러 등 밀폐용기 안에 못, 나사, 바늘, 면도날 파편 등 금속을 가득 채워넣은 후 폭발할 때 발생하는 압력에 의해 수십·수백 개의 금속 물질들을 사방에 날려보내 살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폭발물은 제조과정이 조악해 폭발력이 크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사제폭발물은 맞다. 하지만 워낙 조악하게 제조되다 보니 급격한 연소만 일어나 쇼핑백이 터졌을 뿐 일반 폭탄의 폭발처럼 용기 자체가 터질 만큼 높은 폭발 압력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경찰 총기살해범 성병대 집에서 발견된 사제폭발물은 단순히 화약 등으로 폭발력을 노린 소위 '파이프폭탄'이었다. 확실한 살상을 노린 '못폭탄'이 국내서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수의 출근 시간을 노리고 폭발물을 연구실 앞에 갖다 놓은 것으로 볼 때 평소 김 교수의 생활패턴을 잘 아는 지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 교수는 경찰에 "타인의 원한을 살 만한 일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최근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투명 망토'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을 최근 개발하는 등 성과로 국내 공학계의 신기술 권위자로 주목받던 인재다. 경찰은 연구실 주변의 2 곳의 CCTV자료를 입수해 분석 중이지만 아직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평화로운 서울 도심 캠퍼스 한 가운데서 특정 표적을 노린 폭탄테러 시도가 발생하면서 '테러공포'도 확산 중이다.
이날 연대 신촌캠퍼스에선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학생·교직원들이 삼삼오오 대피하는 혼란스런 모습이 포착됐고 학교 측에선 사고가 발생한 공학관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수업과 시험을 일절 중단했다. 재학생 커뮤니티 '세연넷'에는 "지금 학교 갈 수 있나요? 테러 때문에···"라는 글이 올라오는 등 불안감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영화나 뉴스에서나 볼법한 폭탄테러가 한국서도 발생했다"는 반응들이 속속 올라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도 사제폭탄을 이용하는 등 더 이상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인터넷이 발달로 일반인들도 쉽게 폭탄 제조법 같은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인식 개선과 제도적 안전 장치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메일경제 취재팀이 '못폭탄'(Nail bomb)으로 검색하니 상세한 사진이 첨부된 제조법들이 쏟아졌다. '콜라 캔으로 강력한 폭탄 만들기' '시한폭탄 제조법' 등 제 동영상만 1280만 개가 넘어섰다.
[유준호 기자 / 임형준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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