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찾아간 서울 성북구 성북천 한편엔 사슴 모양의 조형물 두 점이 잡초 속에 방치돼 있었다. '사슴의 외출'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2012년 설치됐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이끼와 풀이 온통 몸통을 채우고 수사슴 뿔은 아예 떨어져 나갔다. 산책 나온 시민 고모씨(38)는 "저게 무슨 미술품이냐"며 "정부가 아까운 세금들여 저런 흉물을 왜 만들었는지 한심하다"고 혀를 찼다.
시민들에게 보는 즐거움과 도심미관을 위해 설치한 '거리의 미술' 공공조형물들이 관리부실로 시민들 공감을 못 받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가고 있다. 애초 기획단계부터 전문가들의 철저한 심사나 주민들 의견 반영없이 지자체장 관심사 등에 따라 즉흥적으로 설치되다 보니 그야말로 '전시성 조형물'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역앞 고가보행로 서울로 7017 개장 기념으로 설치된 '슈즈트리'가 흉물 논란 탓에 겨우 9일간 전시를 마치고 지난달 29일 철거된 게 단적인 예다. 헌 신발 3만여족을 활용해 만든 이 작품은 소비문화를 되돌아보고 환경보호 중요성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만들었지만 처음부터 입방아에 올랐다. "예술성은커녕 흉하고 악취가 난다"는 지적에다 예산낭비 논란까지 일었다.
실제 불과 9일간 전시에 든 예산만 1억3900만원에 달한다. 서울시 디자인 담당부서가 아니라 조경관리부서인 푸른도시국이 설치를 주도했다. 시에 공공미술자문단이 있지만 자문단 심의절차 등은 아예 거치지도 않았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자는 취지도 있었는데 시민들이 공감하는 미술품에 못미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시민과 작품을 연결하기엔 공무원의 감성지수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정부나 지자체가 설치한 서울시내 공공조형물은 총 163개에 이른다. 권익위 실태조사 결과 전국적으로는 2400여개의 공공조형물이 있으며, 투입된 예산은 확인된 것만 4000억원을 웃돈다. 도심 미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데다 유커 등 관광객 유치효과까지 노려 해마다 지자체별로 매년 수십여점을 새로 설치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민들 공감을 그다지 얻지 못하는 것은 애초부터 시장·구청장 등 지자체장들의 즉흥적인 관심이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의 여의도 한강공원에 설치된 '괴물 동상'이 대표적이다. 높이 3m, 길이 10m, 무게 5t의 대형 조형물은 지난 2012년 7월 "한강 관광상품화를 위해 영화 '괴물' 속 캐릭터를 설치하면 어떻겠냐"는 박원순 시장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당시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박 시장 아이디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2015년 초 괴물 조형물을 설치했다.
투입된 세금은 1억8000만원.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민들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5일 한강공원에서 만난 시민 윤여수씨(45)는 "영화가 유행한지 한참 지났고 보기에도 '딱' 징그럽기만 하다"며 "좋다고 얘기하는 이웃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예술 선진국'인 프랑스의 경우 작가와 관리담당자가 공공미술 설치기획부터 시민들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예산대비 효율성을 꼼꼼히 따져 실행에 옮긴다. 또 분기별로 중간 점검을 실시하고, 작가는 관리·보존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별도의 지침까지 내놔야 한다. 반면 국내 공공 조형물 관리에 대한 규정은 허술하기만 하다. 현재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공공조형물에 관한 조례 등을 마련한 곳은 8개구 뿐이다. 지난 2015년 7월 서울시 디자인정책과가 시행한 '도시문화시설점검'에 따르면 환경정비가 필요한 조형물이 전체의 60%, 세척이 필요한 조형물은 3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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