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발생한 화마에 삶의 터전을 잃은 강원도 강릉·삼척 산불 피해 주민들도 시름을 잡시 잊고 투표소를 찾아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산불로 집을 잃은 강릉시 성상면 관음2리 주민 이재민씨(81)와 강순옥씨(79) 부부는 성산면 제1투표소를 찾았다. 집이 불에 탄 뒤 강릉 아들 집에서 지내고 있던 이씨는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말했다. 심장수술로 몸이 불편한 아내 강씨도 "아들이 태워주고 이웃이 부축해서 왔다"며 "국민으로서 투표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종사원들은 강씨를 보듬으며 격려했다. 집 일부가 소실된 김재옥씨(82·여·성산면 어흘리)도 투표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한번도 투표를 안한 적이 없다"면서 "평화스러운 나라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차기 대통령에 당부했다. 김 씨의 집에 붙은 불을 끄다 손목을 다친 김진걸씨(63)도 깁스를 한 채 투표장에 나왔다. 김씨는 "이웃의 혼자 사시는 어르신 집이 위험해 불을 끄다가 손목을 다쳤다"라며 "투표는 당연히 해야 하기 때문에 왔다"고 했다. 이날 강릉시선관위는 성산면 일대 산불피해 주민들이 투표에 불편함에 없도록 마을 순회 버스를 운행했다.
200ha의 임야 피해가 발생한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주민들도 삼삼오오 모여 승용차를 타고 투표소를 찾았다.투표를 마치고 나온 주민들 표정은 밝았다. 투표관리인들과 평소 친분이 있는 주민들은 담소를 나눈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산불 진화를 위해 밤낮없이 화마와 싸우고 있는 산림 당국 등 여러 기관 직원들도 잠깐의 틈을 내서 투표했다. 이들은 오전 일찍 투표하고 난 뒤 곧장 마지막 남은 불씨 제거에 나섰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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