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가 주도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린 18일 오후 2시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
'보수인터넷 매체 구독자들을 모집한다'는 천막 부스에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탁자에는 '애국의 성지로 변모한 서울 광장'이라는 머릿기사를 담은 종이신문이 가득 쌓여 있었다. 신문 형태로 만들어진 해당 '인쇄물'의 정기 구독료는 1만5000원.
'프리덤뉴스'라는 제호의 인쇄물 첫 페이지를 넘기자 '탄핵소추사유 대(對) 최서원(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의 헌법재판소 증언 쟁점 분석<2>'이라는 제목의 글이 2페이지에 걸쳐 적혀 있었다. 이 해당 지면 아래에는 일부 언론에서 프리덤뉴스를 향해 '가짜 신문'이라고 지적한데 대한 반론도 실려 있었다.
이 신문을 읽던 김순영 씨(67·여)는 "사실도 아닌 일에 언론과 검찰이 달려들면서 대통령이 쫓겨나게 생겼다"며 한탄했다. 대학생 김재현 씨(23)도 "최근 고영태 녹취록을 보면 대통령도 속았다는 점이 명백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극기 집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오후 4시 30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6차 촛불집회가 시작을 알렸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발걸음이 속속 늘어나고 있던 오후 5시께 광장 한켠에서 '광장신문'이라는 인쇄물이 배포되고 있었다. 이 신문은 '탄핵, 이제 재벌 차례다'라고 머릿기사를 뽑았다.
신문 첫면을 넘기자 '혐오와 불안의 유령의 광장을 배회하고 있다'며 태극기 집회를 비판하는 취지의 글이 적혀있었다.
16차 촛불집회와 13차 태극기집회가 열린 18일 서울 광장은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심을 드러내는 '갈등의 장(場)' 이었다. 최근 이른바 '가짜뉴스 (Fake news)'가 여론을 오도하고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양측 진영은 "서로가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하고 있다"고 비방하면서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날 태극기집회 주최측인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은 촛불집회의 인원 추산을 담은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아세우며 포문을 열었다.
주최측 관계자는 "(촛불집회 측이) 광화문 광장에 70만이니 80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며 "아무리 봐도 5000명이다.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촛불집회에서도 보수단체의 주장을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맞받았다.
촛불집회에 참가해 마이크를 잡은 참가자는 "태극기 집회는 가짜뉴스에 홀려서 나온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촛불집회에) 나오신 분들 중에 가짜뉴스 보고 나온 사람이 있냐"고 말하며 설전을 이어갔다.
최근 양쪽 진영은 서로가 주장하는 정보에 대한 합리적인 검증 없이 상대방의 주장을 '가짜뉴스'로 몰아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가짜뉴스' 논쟁이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이라고 지적한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해 얻게 되는 편견이다. 즉, "우리 측 정보만 맞고 너네편 정보는 모두 틀렸다"고 믿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심리학 전문가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들에 향해 적대를 선포하고 모두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라며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인들의 발언은 확증편향 현상에 기름을 붓고 있는데, 이는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날 보수단체 집회는 지난 주에 이어 많은 인원이 모였다. 주최측은 이날 250만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인원 집계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서울시청 광장에서 남대문까지 빽빽하게 인원들이 들어서 지난주와 비슷하거나 그 보다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분명해보였다.
반면, 촛불집회 주최측은 "올들어 최대 인원인 80만 인원이 운집했다"고 밝혔다.
[유준호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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