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는 ‘비폭력’을 강조한 평화 시위였다.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의 격렬한 충돌이 없어진 자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향한 풍자가 대신했다.
최 씨의 국정농단이 시국의 주된 관심사이자, 박 대통령 하야 주장의 원인이 된 만큼 이날 집회는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발언과 행동이 두드러졌다.
본집회 시작 직전 참석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마련된 스트레칭을 하는 순서부터 박근혜 정권의 풍자가 시작됐다.
주최 측 스트레칭 시범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3억 5000만원 예산을 들여 보급한 차은택 씨의 ‘늘품체조’ 대신 3500원짜리 ‘하품체조’를 가르쳐주겠다며 시범을 보였다.
방송인 김제동이 진행을 맡은 만민공동회에서 한 초등학생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준 권력을 최순실 씨에게 줬다. 그래서 대통령이 아니다.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자신이 아무 죄 없는 것처럼 최순실 씨와 비서들에게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박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제가 여기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하려고 초등학교에서 말하기를 배웠나 자괴감이 듭니다”고 말을 이어가 박수를 받았다.
문화예술계 인사와 학생들은 개성 있는 행사로 집회에 동참했다.
자신을 ‘문체부 블랙리스트’로 소개한 임옥상 화백은 서울시청 서울도서관 앞에서 우레탄폼과 한지로 만든 박 대통령과 최 씨 대형 얼굴상에 못을 꽂아넣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날 대학로에서 진행된 행사에서도 닭 대가리 모양의 탈을 쓴 대학생과 닭 모가지를 비튼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 출발해 도심으로 행진한 대학생들 선두에는 다홍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고 오방색 풍선을 든 채 박 대통령의 가면을 쓴 사람이 섰다.
참가자들은 특히 야구 응원가로 많이 쓰이는 ‘아리랑 목동’이나 밴드 10cm ‘아메리카노’를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이번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일부 시위자들이 경찰과 한때 맞부딪히자 “폭력은 안 된다”고 외치며 시위가 몸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그동안의 집회 때보다 격렬한 상황은 잦아들었으나 분노는 그대로 피켓을 통해 전해졌다.
집회에 함께한 이들은 ‘배터리도 5%면 바꾼다’ ‘지지율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탓해!’ ‘박근혜 때문에 무한도전 못 보고 광화문 나옴’ 등 해학이 담긴 메시지를 전했다.
청와대 인근 행진과 함께 진행된 문화공연 무대에 오른 가수 이승환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들지 못해 창피하다. 요즘 정신적 폭행을 당한 느낌이다”며 자신의 대표곡 ‘덩크슛’ 중 일부 노랫말을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시민들과 불렀다.
[디지털뉴스국 한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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