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문장이 이렇게 공허한 문장이었나요? 우린 대통령에게 그 헌법 1조 의미를 알고 있나 묻기 위해 나온 겁니다.”
서울 시청 광장 앞에서부터 광화문 세종종합청사 앞까지 약 2km의 구간. 대한민국을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민심이 암흑처럼 어두워졌지만 이 곳엔 수십 만개 촛불이 모여 밤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시위 양상도 과거 광우병 사태·세월호 집회 때와는 달랐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발언권을 특정 시민단체에 맡기지 않았다. 스스로 준비해온 서툴지만 솔직한 심정을 스스로 마이크를 잡고 읽어내렸고 집회 때 마다 늘상 시도됐던 청와대 진입과 폭력충돌도 현장과 사회관계망(SNS)의 신속한 전파로 막아냈다.
◆‘백남기’ 영결식 있었지만 특정 단체 ‘주도권’ 못잡았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2만여명이 참가한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렸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이 모여든 것은 범국민 대상 집회가 시작된 오후 4시부터였다. 대다수 시민들은 백씨 영결식 보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정부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에 집중한 모습이엇다.
지난 2008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조직돼 시위를 이끌어간 광우병 집회 때와도 다른 모습이다. 역시 ‘4·16연대’라는 조직적 차원에서 시위 주도가 이뤄진 세월호 집회 때와도 대비된다. 촛불집회에는 수백개 단체가 참여했다. 취재진이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확인한 단체만 해도 150여개가 됐다. 9세 아이와 함께 나왔다는 강정아 씨(40여, 주부)는 “아이가 나중에 커서 역사를 배울때 2016년을 돌아보며 그 때 우리도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도록 교육차원에서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한종만 씨(64·은평구)는 “집회에 참여하는 자체가 육십평생 처음”이라며 “대한민국의 권력이 ‘1+1’(박근혜 대통령+최순실)이 아니라 ‘1(대통령)+모든 국민’이라는 점을 깨우쳐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메시지는 무겁게, 표현은 유쾌하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거웠으나, 그 표현방법은 유쾌했던 점 또한 과거 대규모 집회와는 다른 점이었다. 시위보다는 프로야구경기장이나, 대형 콘서트 시작 직전의 흥겨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과 20~30대 젊은 연인들도 다수 보이는 등 소풍 나온 분위기 곳곳에서 연출됐다. 한 힙합 가수의 즉석공연이 벌어지며 시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광장에서 만난 파란눈의 이탈리아 여행객 안토니오 도나도니(34)씨는 “진지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축제같이 진행하는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폭력충돌 없이 우산혁명식 분노
이번 시위는 공식적인 주도 단체 또는 특정 리더 없이 20만명의 시민들이 뭉쳤던 2014년 10월 홍콩 우산혁명과도 비슷한 모습이다. 홍콩 우산혁명은 중국 본토의 선거개입과 과도한 내정간섭에 반발해 고등학생인 조슈아 웡이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우산으로 경찰의 살수차와 최류탄을 비폭력으로 막아낸 ‘도심 시위’다. 실제 이날 집회에는 중·고등학생들도 상당수 참여했다. 광화문 광장 맞은편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중고등학생 40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중고생연대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중학생 박모군은 “2년 전 홍콩에서 중국으로부터 선거자치권을 주장하며 비폭력 저항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도 15살때 시민단체를 만들었던 학생 ‘조슈아 웡’이었다”며 “우리가 분노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전혀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벽부터 쌓고 밀어내던 공권력 대처도 변화양상
이날 집회는 주최측 추산 최대 20만명이 모여 당초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지난 주말 집회에서 약 2만명이 모였던 것을 감안하면 일주일 사이 시위참여자가 10배나 불어난 것이다. 큰 물리적 충돌은 일절 발생하지 않았다. 얼굴과 눈을 가리고 새총을 쏘는 전문시위꾼 역시 보이지 않았다. 도로를 점거한 시민들이 한때 예정된 경로를 벗어나 명동 쪽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경찰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교통혼잡을 막기위해 경찰병력이 횡단보도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에 나서면 시민들은 차분히 지시에 따르는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전경과 말다툼이 벌어지면 주변 사람들이 “하지마, 하지마” 구호를 외쳐 거친 현장분위기를 자제시켰다.
공권력 대처 양상도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주만 해도 경찰은 대열에서 이탈한 시민들의 도로 진입을 막는 과정에서 적지않은 대치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날 경찰은 행진과정에 개입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충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자체가 과격단체들이 주도하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고 교통혼잡 영향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질서 유지에 필요한 만큼만 개입만 했다”고 밝혔다.
[연규욱 기자 / 박재영 기자 / 양연호 기자 /임형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