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남편과 아내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부모와 결별해야 하는 자녀도 빼놓을 수 없는 이해당사자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부모에게서 벗어나길 희망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 밑에서 생활하길 원할 수도 있다. 이에 이혼의 가장 직접적 피해자이면서도 부모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자녀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 자녀의 선택은 폭넓게
법무부 가사소송법 개정위원회(위원장 최금숙 이화여대 로스쿨 명예교수)가 지난달 8일 ‘절차보조인’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 같은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절차보조인은 미성년자가 법정에서 부모에 휘둘리지 않고 최대한 자기 입장을 반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다. 만19세 미만의 자녀라도 ‘부모 중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보고 이런 선택권을 최대한 행사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절차보조인 제도를 통해 자녀들이 부모 눈치를 살피지 않고 솔직한 심정 털어놓을 수 있다.
독일은 1997년부터 절차보조인 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의 이익이 상반되거나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의 친권을 박탈해달라고 요청하면 절차보조인이 이를 법원에 전달한다. 절차보조인 선임건수 1999년 2544건에서 2007년 1만3657건으로 늘어나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부모에겐 더욱 엄격하게
자녀의 권리가 확대되는 반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부모에게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 특히 자녀 양육비가 제 때 지급되는지, 부모와의 접견 기회(면접교섭권)가 제대로 보장되는지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는 추세다.
가사소송법이 개정되면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양육비를 정해진 날짜보다 30일만 늦게 내도 부모를 유치장에 가둘 수 있게 된다. 자녀와 부모가 만나는 절차도 법원이 정한 ‘면접교섭보조인’이 관리하게 된다.
법원이 가사재판 중 ‘조정’을 강조하는 것도 자녀의 권리 행사와 연관이 있다. 조정을 통해 부모가 합의에 이르면 △계좌이체 등 양육비 집행 방식 △학비 등 항목별 지출 주체 △합의사항 불이행 시 후속조치 등에 대해 훨씬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가령 ‘양육비를 일정 기간 내지 않으면 배우자 회사로 직접 찾아가 항의 전화를 할 수 있다’는 내용도 조정 사항에는 넣을 수 있다.
박병희 법무법인 태승 대표변호사(42·사법연수원 35기)는 “최근 가사 조정에서는 자녀와 부모의 면접교섭 횟수를 ‘한 달에 무조건 2번, 방학에는 3번 이상 만나게 한다’는 식으로 매우 상세히 정해 반드시 지켜지도록 한다”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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