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가 2008~2011년 5개 주요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협력업체에 총 242명의 퇴직자를 ‘낙하산 고용’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위탁업체 직원수 508명의 절반 수준인 47.6%에 해당하는 숫자다.
특히 2012년 재계약 과정을 거치면서 퇴직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66.8%로 20% 포인트 가량 급등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드러난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의 용역업체 잠식이 수 년에 걸쳐 꾸준히 강화됐다는 의미다. 그해 기준 전체 515명의 위탁업체 직원 가운데 344명이 서울메트로 출신이었고, 업체가 자체 고용한 직원은 171명에 불과했다.
5일 매일경제가 확인한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2013년 궤도백서’에는 이같은 서울메트로의 ‘조건부 민간위탁 위탁인원 현황’이 포함됐다.
2008년 서울메트로는 역·유실물센터 관리, 차량기지 내 운전업무, 전동차 경정비, 모터카·철도장비 관리 등 4개 업무를 외주화했다. 순서대로 파인서브웨이, 미래철도운영, 프로종합관리, 에코레일이 위탁업체로 선정됐다. 계약에는 ‘서울메트로 퇴직자를 정규직으로 우선 고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강제됐다. 그 결과 파인서브웨이에는 전체 위탁인원 85명 가운데 절반을 넘는 45명, 미래철도운영은 78명의 50%인 39명이 메트로 출신으로 채워졌다. 프로종합관리와 에코레일은 각각 107명 중 33명, 113명 중 35명으로 31% 수준의 비율을 보였다.
2011년 12월을 기점으로 서울메트로의 용역업체 잠식은 더 확연하게 노골화했다. 이번에 사고를 낸 은성PSD에 승강장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업무를 위탁한 시점이다. 당장 이때 계약한 은성PSD의 위탁인원 125명 중 90명(72%)이 메트로 퇴직자였다. 2012년 4월 위탁업무를 재계약할 때 파인서브웨이와 프로종합관리의 메트로 출신 직원 수는 각각 56명, 76명으로 확 늘었다. 비율도 65.9%, 54.3%로 올라갔다. 구내운전과 모터카·철도장비 업무에는 성보세이프티, 고암이 새롭게 얼굴을 내밀었다. 성보세이프티는 직원 78명 중 63명(80.8%), 고암은 87명 중 59명(67.8%)을 메트로 퇴직자로 고용했다.
어이없는 낙하산 인사의 이면에는 서울메트로의 ‘눈 가리고 아웅’식 경영 효율화가 있었다. 서울시는 2007년 서울메트로에 경영 적자 해소와 부채 감소를 위해 정원 10%인 약 1000명의 인력을 감축하도록 했다.
여기서 서울메트로가 선택한 꼼수가 ‘조건부 민간위탁’이다. 정부·공기업의 일반적인 위탁조건은 보통 ‘낡은 시설을 자기 비용으로 시설 개·보수하라’는 식의 내용이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자사 직원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독소 조항’을 넣고, 기존에 서울메트로에서 받던 급여·복지 수준을 보장하도록 강제했다. 표면적인 직원 숫자는 줄지만, 실제 들어가야 하는 인건비 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구조다.
이 상황에서 비용을 절감하면 피해는 모조리 용역업체 자체 고용 직원과 비정규직들에게 돌아간다. 실제로 용역업체로 옮긴 메트로 퇴직자들이 일반 직원보다 많게는 수천만원의 연봉을 더 받으며 편안한 일만 도맡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실정이다.
2012년 계약한 업체들은 2015년에도 고스란히 자리를 지켰다. 2015년 5~8월 파인서브웨이, 성보세이프티, 프로종합관리, 고암, 은성PSD는 총액 303억3800만원 규모로 1년짜리 재계약을 체결했다. 정년 퇴직 등이 이뤄지면서 현재 메트로 출신 비율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올해 5월 기준 파인서브웨이 11명, 성보세이프티 24명, 프로종합관리 37명, 고암 28명, 은성PSD 36명이 남아 있다.
사고로 숨진 김 모씨(19) 유족에 대한 위로금 협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은성PSD 측이 지급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형찬 서울시의회 의원은 “은성PSD가 김씨 보험금 지급 부분은 협조하고 있지만 도의적 책임과 관련한 위로금은 ‘줄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서울시·서울메트로가 모금 운동을 하거나, 서울메트로가 지급한 뒤 은성PSD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서울메트로가 직접 위로금을 지급하거나, 은성PSD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앞서 2013년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고 유가족들은 항소까지 가는 소송전을 겪고서야 강제조정으로 은성PSD에 배상금 4500만원을 받았다. 은성PSD 이재범 대표는 “보험금이 적게 나오면 위로금을 더 주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도 저가수주를 하는 영세업체라 지난해 강남역 사고 때 유진메트로처럼 수억원을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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