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남양연구소에 근무하는 조합원 A씨(41)는 공휴일인 5월1일 ‘근로자의 날’ 뿐만 아니라 이튿날에도 쉰다. 현대차 단체협약 규정 덕분이다. 이번 근로자의 날처럼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그 이튿날에도 쉴 수가 있다. 일부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들은 5월3일과 4일 이틀 연차 휴가를 내서 5월 첫째 주를 통째로 쉬려고 한다.
그러나 과장급 이상 직원은 다르다. 인사·총무·홍보 등을 제외한 일반직(사무직)과 연구직은 과장으로 승진하면 조합원 자격이 없어진다. 당연히 단체협약 적용대상이 아니어서 2일에도 출근이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직들은 과장 승진을 거부한다. 평생 조합원으로 남아 정년보장과 휴일 연장 등의 혜택을 보기 위해서다.
28일 현대차 노조가 이런 얌체 직원들의 ‘승진 거부’를 제도화하겠다고 나섰다. 올해 임금협상안에 연구직과 일반직 조합원의 ‘승진 거부권’ 보장을 명시하자고 사측에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조합원들은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동시에 현대차는 조합원들의 대리 승진은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자동 승진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대리까지는 승진을 보장받고, 과장부터는 승진 여부를 조합원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아닌 일반 직장인들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런 얌체 같은 요구를 하는 조합원들은 주로 남양연구소의 대졸 직원들이다. 이들은 평생 조합원 자격을 부여받는 생산직과 달리, 과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조합원 자격을 박탈당할 확률도 높다.
현재 현대차의 연구·일반직 조합원은 연구직 6000여 명을 포함해 무려 8000명에 이른다. 현대차 노조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 임금협상안에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노조가 승진거부권과 비슷한 내용을 요구했으나 국민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체협상 요구안에는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조합원들이 승진을 포기하고 조합원으로 남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해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회사가 어려워져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노조라는 방패박이 있으면 해고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더욱이 현대차 단체협약은 노조원에 유리하게 체결돼 있어 조합원들이 누리는 혜택이 만만치 않다. 조합원들은 퇴직할 때까지 호봉승급이 적용돼 임금이 동결돼도 해마다 임금이 오른다. 굳이 승진을 안해도 세월이 지나면 연봉 1억원을 받는다. A씨처럼 중복 휴일 혜택도 폭넓게 누릴 수 있다. 반면 과장 이상 비조합원은 연봉제 적용을 받고, 인사 고과를 해마다 받아야 해 상부담이 크다.
그러나 현대차 울산공장 안팎에서는 “승진거부권 요구는 현대차가 노조 천국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과거 현대차에서는 조합원으로 남기 위해 일반직에서 생산직으로 업무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2년 현대차가 노사합의에 따라 연구·일반직 직원을 대상으로 생산직 전환 신청을 받은 결과 176명이 신청하기도 했다.
한편 현대차 노조는 금속노조가 정한 임금 요구안을 반영해 임금(기본급) 15만2050원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과 해고자 원직 복직도 요구안에 포함했다. 노조는 사측이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임금피크제 확대 시행에도 반대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 등 경영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임금이 많은 대기업의 임금 인상 억제를 올해 노동개혁 실천 과제로 정한 정부 시책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 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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