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경기 악화로 경영난에 빠진 한진해운이 ‘알짜사업’인 벌크선 부문(H라인 해운) 주식을 전량 매각한다.
27일 해운·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H라인 해운 잔여 지분(5%)을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모두 팔기로 의결했다.
채무 조정을 위해 내달 열릴 사채권자 집회를 앞두고 사전 설명회를 여는 방안도 논의했다. 이사회는 지난해 당기 순이익 흑자 전환 등 실적 회복을 바탕으로 채권자들을 설득한다는 ‘정공법’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논란이 된 조양호 한진 회장,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등 오너가 사재출연에 대해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자율협약전 알짜자산 매각 시작
H라인 매각으로 한진해운은 340억원 어치 실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잔여 지분 매각대금이 크지는 않지만 채권단에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보완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 운영자금 등 실탄 마련 계획이 구체화했다는 점을 어필하려는 포석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진해운은 조속히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매각이 진행됐거나, 계열사를 통해 팔 수 있는 자산부터 유동화 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보면 중국·동남아 등 800억원 어치 해외 상표권과 벌크선(200억원) 매각이 다음 수순이다. 해외 상표권은 한진칼에 매각하는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해운은 벌크선 사업부를 한앤컴퍼니에 매각해 세운 H라인에 현물 출자해 지분 22.2% 를 갖고 있었다. 한앤컴퍼니는 2014년 6월 한진해운 벌크선사업부를 3160억원에 인수해 H라인을 설립했다. 한진해운은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지난해 말 지분 17.2%를 매각한 데 이어 이번에 잔여 지분까지 다 털어냈다.
벌크선 사업부는 화주 신용도가 높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는 점에서 알짜 자산으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5860억원에 영업이익 1326억원을 기록했다. 한진 관계자는 “벌크선 사업과 관련해 최소 지분을 남겨놓으려고 했지만 자금 확보 필요성이 급해져 잔여 지분까지 매각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다만 자금조달 계획이 모두 원만하게 완료된다고 해도 한진해운이 쥘 수 있는 자금은 4112억원에 불과하다. 채권단은 6월말 기준 한진해운 운영자금이 5000억원 가량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무조정은 첩첩산중
내달부터 시작될 비은행권(비협약) 채무 조정 작업은 첩첩산중이다. 이날 한진해운 경영진은 실적을 바탕으로 만기연장·출자전환 등 회생 노력에 힘을 보태달라는 전략으로 채권자들을 설득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5년만에 첫 당기 순이익(30억원)을 올리며 흑자 전환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부터 산은과 수차례 협의 끝에 자율협약 신청했고, 3개월간 본격적인 용선료 인하 협상을 벌여왔다. 사채 만기 연장에 대해서도 한 차례 부결된후 6월 재집회를 소집한 상태다.
한진해운 자율협약은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조건부 자율협약이기 때문에 6월 27일 1700억원 은행 빚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용선료·사채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자동 파기된다.
한진해운이 이제와서 현대상선과 같은 일정을 짠다면 법정관리행이 유력하다는 얘기다. 용선료 인하 협상은 아무리 늦어도 5월말에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사채권자 집회가 열리기 전에 앞서서 용선료 인하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사채권자들을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며 “사전 설명회를 한다고 쳐도 사채권자집회는 6월초엔 개최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다”고 전망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결국 대주주 사재출연 등 오너가의 상징적인 회생 의지가 없다면 다수 투자자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진해운 측은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했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경영진 의지는 확고하다”며 “용선료 협상도 열심히 하고 있는 만큼 시장에 곧 좋은 뉴스를 발표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용범 기자 / 김정환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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