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정전·평화 운동을 벌이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총살당한 독립운동가 고(故) 최능진 선생이 65년만의 재심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이승련)는 25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 선생에 대한 재심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선생은 전개한 평화통일운동은 국제연합 주선 하에 민족상잔의 비극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을 구원 또는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군법회의가 유죄의 증거로 삼은 최 선생의 진술은 ‘국방경비법을 위반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의 내용일 뿐, 스스로 혐의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고(故) 최능진 선생은 해방 직후 소련의 탄압을 피해 내려왔다가 미군정에 의해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이듬해인 1946년 친일 경찰 척결을 시도하다 경찰 간부직에서 밀려났다.
이후 그는 1948년 5·10 총선거에 출마해 같은 선거구의 이승만 전 대통령과 경쟁을 펼쳤으나 선거 이틀 전 추천인 날인 위조 혐의로 입후보 등록을 취소당했다. 또 정부 수립 직후에는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인민군에 의해 풀려난 그는 서울에서 정전·평화 운동을 벌이다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951년 2월 처형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9년 9월 최 선생이 이승만 정권에 맞섰다가 사법기구의 자격이 없는 군법회의에서 부당하게 총살당했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유족은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받아들여 지난해 2월 재심이 개시됐다.
앞서 1심은 “당시 재판기록은 모두 사라졌고 판결문이 유일하게 남아있는데, 판결문에 기재된 최 선생의 진술을 살펴보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최 선생이 고의로 적을 은닉·보호하거나 또는 적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다른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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