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순위 맥킨지, 2순위 현대차, 2.5순위 삼성전자(무선사업 부문), 3순위 삼성물산(상사)···’
취업준비생 서 모씨(27)는 매일 가는 취업 커뮤니티에 이 같은 내용의 취업배치표 게시물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쉬게 된다. 취업하려는 회사의 등급이 낮은 것을 보면서 자신의 초라한 현실이 고통으로 다가오기때문이다. 서씨는 “이제 하다못해 취업까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는 감옥에 사는 것 같다”면서 “우리는 너무 서열화를 좋아하는 사회”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대기업 취업 서열’ ‘취업 배치표’ 등은 객관적인 자료나 통계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된 신빙성 없는 자료이다. 하지만 이들 배치표는 정보가 부족한 취업준비생들이 그대로 신뢰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령 한 게시물에서 ‘00그룹 미래전략실’은 신입을 채용하지 않는 부서이지만 버젓이 1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현재 취업한 곳에서 미래를 모색하기도 전에 보다 나은 직장을 생각하는 현상은 취업시장에서 근래 팽배하고 있는 ‘서열화’ 여파가 크다는 게 취업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른바 ‘SKY’로 상징되는 대학교 순위처럼 국내외 기업들을 줄을 세우고 1~3순위 안에 있는 기업에 들어가야 성공한 것처럼 여겨지는 글들이 공공연하게 퍼지면서 취업준비생들을 좌절하게 하고 있다.
이른바 ‘취업반수생’이 급증하는 것도 서열화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한 중견기업에 재직중인 박 모씨(27)는 “취업이 워낙 어려워 되는대로 취업을 했지만 들어와서 ‘간판’ 등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여기에 이름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내심 바라는 가족과 주변 지인의 보이지 않는 압박까지 작용하고 있다. 올해 서울의 명문사립 K대를 졸업하고 중견기업에 입사한 공 모씨(28)는 “지난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니 ‘너는 K대 나와서 거기밖에 취업 못했냐’는 말을 들었다”며 “명문대 졸업하고 상대적으로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에 스스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자조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서열화를 통해 상위기업에 입사만이 성공의 평가 잣대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특히나 대학 서열화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극도로 위험한 징후라고 경고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서열화에 익숙한 학생들이 진로를 정하는데 있어 서열화를 통해 목표의식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하지만 지나친 비교는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지 사회적 평판이 높은 회사만을 목표로 입사를 하면 실제 업무와 맞지 않아 이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는다”며 채용 주체와 응시 경쟁자, 최종수혜자 모두가 ‘루저’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결국 ‘간판’보다는 어떤 직무에서 자신의 경력을 어떻게 개발시킬 수 있는지를 취업 개념서열의 ‘제1순위’로 놓고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게 이들 전문가들의 공통된 염려이자 당부다.
[안갑성 기자 / 이윤식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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