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 조직 구성원들에게 처음으로 폭력조직과 같은 ‘범죄단체’ 혐의가 적용돼 실형이 선고됐다.
대구지법 제3형사단독 염경호 판사는 28일 중국과 한국에 콜센터를 두고 기업형으로 보이스피싱 범행을 한 혐의(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죄·사기)로 기소된 국내 관리자급 이모(28)씨에게 징역 6년을, 원모(29)와 문모(40)씨 등 책임자급 2명에게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 전화상담원 역할을 하거나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 나머지 32명에게는 징역 3년∼6년 형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들이 범행에 가담해 획득한 수익을 전액 추징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이 검거되지 않은 총책의 지시를 받아 중국과 국내에 인적, 물적 조직에다 수직적인 통솔체계까지 갖추고 범행한 점, 제3자의 돈을 가로채는 공동 목적 아래 행동한 점, 조직 탈퇴가 자유롭지 않았던 점, 이동자유 제한과 징벌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점 등으로 볼 때 형법 114조의 범죄단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전화상담원 역할을 한 대다수 피고인은 범죄단체 가입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업무 매뉴얼 내용이 금융기관을 사칭하는 내용 등으로 업무 시작 전에 보이스피싱 범행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최근 우리 사회에 보이스피싱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범행 수법도 날로 치밀해지는 환경적인 상황 등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피고인들은 2012년 2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신용도를 높여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속여 범행에 사용할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가 적힌 체크카드를 건네받은 뒤 13억4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출에 필요한 법무사 비용 등을 이들 계좌로 송금하라고 하는 방식으로 돈을 가로챘다. 확인된 피해자만 300명이 넘는다.
피고인들은 체크카드 편취팀, 대출 사기팀, 현금인출팀 등으로 역할을 나눈 뒤 중국과 국내 조직 간 협업 방식으로 범행을 했다.
앞서 검찰은 이 조직이 징벌, 여권 압수, 감시 등 조직이탈 방지와 이탈자에 대한 자체 응징으로 조직 결속을 다지기 위한 내부질서 유지 체계를 갖춘 점과 직책에 따른 위계질서가 잡힌 점 등이 범죄단체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을 범죄단체로 인정한 첫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입하거나 단순 협조한 것만으로도 형사처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단순 사기죄로 처리하던 보이스피싱 범죄를 범죄단체로 처벌함에 따라 그동안 죄질에 비해 낮은 형이 선고되던 관련 범죄를 엄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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