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당시 외국통신사의 서울특파원으로 있으면서 3·1 운동 소식을 세계에 알렸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의 집 ‘딜쿠샤’의 문화재 지정이 추진된다.
서울시는 최근 테일러가 살았던 종로구 행촌동의 딜쿠샤를 현장조사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결과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다음 달 초 딜쿠샤를 문화재로 지정 예고할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현 UPI통신의 전신인 UPA통신의 서울특파원이던 테일러는 1919년 일제가 저지른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3·1운동 당시에는 독립선언문을 입수해 갓 태어난 아들 브루스의 침대 밑에 숨겼다가 보도해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던 테일러는 일제의 탄압과 감시를 받다 1942년 추방돼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가족은 1948년 테일러가 숨진 뒤 그의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와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했다.
테일러는 1923년 종로구 행촌동에 집을 짓고 여기에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 ‘기쁨’ 등을 의미하는 ‘딜쿠샤’(DILKUSHA)라는 이름을 붙였다. 테일러는 1942년 추방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이 곳에서 살았다.
테일러는 아버지 조지 테일러의 뒤를 이어 운산광산을 독점 운영하면서 부를 쌓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인연 등으로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는 2006년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2층 붉은색 벽돌 건물인 딜쿠샤는 개항 이후 지어진 서양식 주택 중에서도 평면 구성과 외관이 독특하다. 화강석 기저부 위로 붉은 벽돌을 세워 쌓은 건물 양식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한 벽돌 쌓기 방식으로 건축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건물로 평가받는다.
서울시는 이런 점들을 고려해 수년 전부터 문화재 지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딜쿠샤의 소유주인 기획재정부와 협의에 난항을 겪으면서 번번이 문화재 지정이 무산됐다. 현재 딜쿠샤에는 쪽방촌 형태로 15가구 26명 정도가 무단점유 형태로 살고 있다.
서울시는 무단점유자가 있는 상황에서 문화재 보존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담당 자치구인 종로구와 함께 무단점유자들에 대한 대책을 검토해 나간다는 전제하에 기재부에 딜쿠샤의 무상 양도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기재부는 무단점유자 문제와는 상관없이 감정평가를 받아 매각하거나 공시지가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일단 다음 달 초 문화재 지정을 예고한 다음 예고기간인 6개월 동안 기재부로부터 딜쿠샤를 무상 양도받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딜쿠샤를 계속 이 상태로 두면 훼손이 빨라질 우려가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가가 소유한 상태에서는 보존과 관리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재부가 될 수 있으면 서울시에 무상양도를 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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