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에서 국제선 항공기를 운항하고 있는 설준석 기장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전투기 조종사였다.
2001년 예편해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한 뒤 14년째 민간 항공기 조종간을 잡고 있다. 이 때만해도 한국은 조종사를 양성하거나 배출할 수 있는 길이 협소해 군(軍) 출신의 이직은 당연시 됐다.
해외에서 조종면허를 취득해 입사한 순수 민간 출신이 겨우 명맥을 이을 뿐이었다. 이후 국내 복수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2003년 한성항공(현 티웨이항공)을 시작으로 저비용항공사(LCC) 시대가 도래하면서 조종사 수요는 더욱 확대됐다. 그럼에도 항공업계는 모자란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양성체계를 갖추기 보다는 외국인조종사를 채용해 빈 자리를 메웠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한국공항공사와 손을 잡고 세계 6위권의 항공운송 강국에 걸맞는 조종인력 양성 체계를 갖추고 나섰다.
2010년을 그 원년으로 볼 수 있다.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는 2010년 7월 유휴공항인 울진공항에 사업용 조종사를 양성하는 민간 ‘울진비행교육훈련원’을 열어 연간 200여 명의 조종사를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국내 항공사 등에 종사하는 4000여명의 조종사 가운데 국적 항공사 조종사의 50% 이상이 군출신이고 12%정도가 외국인이었다.
연간 100여명이 비싼 외화를 들여 외국에서 조종자격을 취득한 뒤 국내자격으로 전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4년 뒤인 지난해 12월엔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비행훈련 인프라스트척처를 대폭 보강했다. 운항 관련 학과를 설치한 국내 8개 대학의 학생을 위한 위한 곳이다.
2011년 이후 조종 관련 학과를 개설한 대학이 2곳에서 11곳으로 늘어났으나 훈련할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는 턱없이 부족해 많은 학생들이 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울진비행교육훈련원과 무안공항 기초비행훈련 과정은 민간 부문의 조종인력 양성 주권(主權)을 확보하고, 일자리창출, 지방공항 활성화, 국부 유출 방지란 ‘4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시도로 풀이돼 왔다.
내년에는 이를 뛰어넘는 고급 조종 인력 양성시대가 열린다. 국내 민간 조종 인력 양성 토대를 마련한 지금의 시도를 능가하는 이른바 ‘조종사 양성 3.0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3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일자리 창출과 항공안전 확보를 위한 조정인력 양성방안’을 채택했다. 우수한 조종인력 2000명을 2017년까지 양성해 청년 일자리 창출과 항공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육성하겠다고 밝힌 조종사 2000명 가운데 68%인 1360명은 현재 정부와 한국공항공사가 지원하고 있는 조종인력 양성 시스템과 연결돼 있다. 정부는 울진비행교육훈련원을 세계적 수준의 항공 교육 아카데미로 육성해 2017년까지 560명의 조종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또한 해외에서 개별적으로 취득하는 조종사 수요를 단계적으로 국내로 전환하고 신규 운항학과 개설대학을 지원해 2017년까지 800명을 육성하겠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울진비행훈련원의 공역을 완화하고, 기상정보 지원, 시설인프라 구축 등 훈련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울진 주변 공역은 대부분 군 훈련 공역으로 둘러싸여 있어 훈련 공역이 지상에서 2500ft(피트)로 제한돼 있다.
특히 무안공항과 울진공항, 김포공항은 삼각축으로 연결하는 고등훈련과정(제트기 훈련 과정)의 도입은 그중에서도 ‘백미’다.
제트기 교육과정이 개설된다는 것은 ‘기초비행훈련(자가용조종사·사업용조정사 자격)→추가비행경력과정(Time Build up)→제트기 교육과정(Jet Rating)→기종전환과정(Type rating·항공사 B737, A320기 등)’으로 이뤄지는 민항기 조종사 자격 취득 프로세스의 ‘완성’을 의미한다. 국내 항공 산업은 아직 레저·비즈니스 분야 보다 항공사 위주의 인력 수요가 많아 대형 국적 항공사와 LCC 등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통상 250시간에서 1000시간의 비행 경력을 갖춰야 한다. 이는 추가비행경력과정을 통해 완성하는데 국내에서는 울진비행훈련원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민항기를 몰기 전 거쳐야 하는 제트기 교육과정은 한서대와 대한한공 정석훈련원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대한항공 정석훈련원은 대한항공과 진에어 입사자 전용이고, 일반인 제트 교육이 가능한 한서대는 시뮬레이터를 갖추지 않아 비상상황 훈련에 한계로 지적돼 왔다.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공항공사가 제트기와 시뮬레이터를 갖춰 제트기 교육과정을 신설하면 ‘공공주도’ 국내 첫 고등훈련과정이 된다. 이 과정은 항공사 입사를 목표로 한 사업용 면허 소지자와 항공사 모두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항공사 입사시 제트자격 취득은 의무가 아니지만 이미 제트교육 과정 이수자를 우대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고, 항공사들은 조종사의 제트자격 취득을 위해 해외 위탁을 실시하거나, 빈 항공기를 이용하는 등의 비효율을 해결할 수 있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연간 150명이 해외 비행훈련기관을 통해 제트 자격을 취득해 외화가 유출(약 36억 원)되고, 해외에서 제트기 자격을 취득한 경우 훈련 프로그램 검증 곤란 등 조종사 품질에 대한 문제가 상존해 왔다.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는 “국내에 충분한 수요가 있지만 제트자격 과정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면서 “내년 선보일 제트과정은 항공사가 필요로 하는 내용과 연계해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정부와 협업해 기초훈련과정, 고등훈련과정, 글로벌 전문 훈련기관과 훈련 프로그램을 고도화하면 국내 항공산업 발전과 일자리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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