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를 잠재적 메르스 환자로 본다. 눈치가 보여서 기침 한 번 못하겠다.”
“마스크를 쓰면 썼다고 뭐라하고, 안 쓰면 안 썼다고 뭐라한다. 택시기사가 봉이냐.”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택시기사들이 말 못할 고충을 겪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진정되지 않자 손님이 줄어든 건 둘째치고, 택시기사에 대한 승객들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신당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강 모씨(58)는 최근 한 노인 승객에게 봉변을 당했다. 탑승한 노인이 다짜고짜 “이 차는 소독이 안된 것 같다. 최근 운행한 곳이 어디인지 다 불어라”라며 호통을 쳤기 때문이다. 강씨는 “간신히 태운 승객마저 내릴까 싶어 참았다”며 “근 한 달째 승객과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승객이 타면 일부러 소독제를 차내에 뿌리는 택시 기사도 있다.
왕십리역에서 만난 송종환 씨(56)는 요즘 승객이 타면 차 구석구석에 소독제를 바르는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 송씨는 “이런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승객들이 안심한다”며 “다 살아보겠다는 노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성동구청역 인근에서 만난 택시기사 박용범 씨(61)는 최근 마스크 착용을 포기했다. 최근 택시 문을 연 손님이 박씨의 마스크를 쓴 모습을 보자마자 다른 택시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박씨는 “내 건강 챙기려다 밥줄이 끊길 것 같아 마스크를 안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인만 씨(61)도 최근 마스크 때문에 두 명의 손님을 연이어 놓친 경험이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던 박씨를 본 승객이 “기침을 원래 자주 하느냐”며 불편한 기색을 비춘 뒤 다른 택시로 가버린 것이다. 무안함에 마스크를 벗었더니, 뒤이은 손님은 “메르스 전염으로 온 나라가 난리인데, 가장 많이 움직이는 택시기사가가 왜 마스크를 쓰지 않느냐”며 탑승을 거부한 것이다.
박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택시기사 처지만 난감해졌다”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택시기사 최 모씨(63)는 “마스크를 차내에 늘 비치하다가 마스크를 찬 손님이 들어오면 전광석화처럼 차고, 반대의 경우면 바로 벗은 뒤 운행한다”고 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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