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나왔는데, 요즘 여기서 보이던 양반들 다들 집에 틀어박혔는지 안보여…”
서울에서 노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꼽히는 종로구 탑골공원. 15일 이곳 일대에선 노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평소 노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장기를 두던 벤치는 곳곳이 비어 있었고, 드문드문 자리를 잡은 노인들도 마스크를 쓴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 모씨(75)는 “병원에서만 메르스 옮는다고 괜찮다고들 하는데 그냥 믿고만 있기엔 불안하다”며 “나는 괜찮다며 호언장담하던 사람들도 자식들이 외출을 말리니 마음이 불편해 어디 나와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거리에 노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메르스는 만성 폐·신장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노인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실제로 메르스 사망자 대부분이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던 노인들이라 이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더 크다.
종로 일대의 노인무료급식소도 대부분을 문을 닫아 저소득층 노인들의 처지를 더욱 서글프게 하고 있다. 전국천사무료급식소 서울본부 종로무료급식소 관계자는 “메르스 여파로 평일 기준 20~30명이던 봉사자 수가 1~2명으로 줄고 어르신들 역시 메르스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어 10일 이후로 단기 휴업하고 있다”며 “나와 계신 분들도 빵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급식소는 노인들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20일부터 다시 급식을 개시할 방침이다.
서울내 상당수 노인복지센터는 휴관에 들어갔다. 복지센터 자체적으로 결정한 경우도 있지만 이용자들의 휴관 요청이나 프로그램 참여율 저하도 이유였다. 8일부터 19일까지 휴관 중인 공릉어르신복지센터의 한 관계자는 “메르스 때문에 나중에 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문의하는 분들이 많다”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르신 수도 현저하게 줄어 휴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메르스 공포에 모습을 감춘 것은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 중 한 곳인 삼성서울병원 인근 강남구립 일원어린이집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가 본격화되자 “5분의 1 가량의 학생이 등원을 하지 않고 지난 주는 아예 몇 명밖에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왔다갔다하는 길도 불안하다’, ‘아이를 안 보내고 싶다’며 육아지원금 때문에 억지로 보내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북지역에서 유일하게 확진환자가 발생한 건국대병원 인근의 한 어린이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어린이집 원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일부 학생이긴 하지만 15명 정도 오지 않았다”며 “아이들의 열을 체크하고 손을 소독시키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 위생조치를 취한 다음에야 학부모들이 다소 안심하더라”고 밝혔다.
[백상경 기자/ 박창영 기자 / 안갑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