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강타한 메르스 감염의 진원지였던 경기도 평택성모병원. 8일 오전 병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병원 주차장과 정문 앞 건물의 식당, 약국도 문을 닫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인근의 한 주민은 “메르스 첫 환자가 이 병원 안을 휘젖고 다니고 2차 감염자가 많이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병원은 물론 근처도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첫 번째 확진 환자가 옮긴 4개의 병원 중에서 2번째로 머문 이 병원(5월15~17일)은 38명이 감염되면서 메르스 최대 전파처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일엔 메르스 민간합동대책팀 역학조사위원회 현장 조사 결과 메르스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첫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8104호실에는 환기구와 배기구가 없고, 에어컨만 있었으며 창문 크기도 작았다. 최보율 역학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이런 환경에서는 기침 등으로 인해 흩날리는 비말이 장기간 축적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신문 취재 결과 문제의 병실은 작년 11월 중순까지만 해도 7인실 병실로 설계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14일께 병원측이 2인실로 설계 변경을 요청하면서 지금의 병실이 됐다.
당시 병원측은 11월 25일 설계 변경 승인을 받아 7인실로 설계했던 3곳을 2인실로 변경해 8104호실 같은 2인실 6개를 새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1층 면적을 약 30평 늘리고, 병원 앞에 단층 별관도 새로 건립했다.
평택시 관계자는 “설계변경이 접수되면 건축허가와 마찬가지로 건축·소방분야 등 관련 분야의 의견을 듣는다”면서 “실내 구조 변경의 경우 시간당 환기량의 규정 이행 여부를 중요하게 보는데 이 병원 8층은 필요 환기량이 시간 당 평균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법은 시행규칙에 환자 1명당 최소면적 기준만 규정하고 있을 뿐 병실에 환기·배기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아 검토 대상은 아니었다.
취재진은 당시 병실 설계 변경 이유를 알기 위해 의료재단과 설계회사, 감리회사를 모두 접촉했지만 말을 아껴 구체적인 이유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평택성모병원의 병실 설계 변경이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저수가 문제와 의료법의 사각 지대를 대변한 것으로 눈여겨 봐야할 사례라고 강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진료 원가의 70%에 불과한 수가로 병원을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인실을 상급병실로 변경해 비급여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환자에게 맑은 공기 공급이 필수임을 감안할 때 환기구와 배기구 등 공조시설이 충분히 확충돼야 함을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도 있다.
고려대 약학과 송대섭 교수는 “감염병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배기구 환기구 등 공조설비를 포함해 병실내 간격, 동선, 의료인 자기 보호 등의 전반이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법상 공조시스템을 갖추라는 법령은 없지만 평택성모병원 병실의 경우 전기냉난방기(Electric Heat Pump)와 창문이 있었다”면서 “중앙공조였다면 오히려 균들이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다. 그보다 환자가 엠보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고, 좁은 곳에서 보호자가 잠을 자며 간병하는 등의 한국식 병실 문화 개선과 제대로된 격리 체계 마련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평택 =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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