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부인과 자녀 2명과 함께 필리핀 세부로 휴가를 가기로 하고 저녁 7시30분에 출발하는 해외 저가 항공사의 3박 4일 패키지 상품을 예약했다. 당일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지만 해당 항공편은 항공기 고장으로 출발이 계속 지연됐다. A씨는 새벽 1시 40분까지 기다리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항공사 카운터에서 환불 각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이 항공편은 새벽 2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A씨는 항공사에 항공료 180만원과 함께 여행대금 150만원의 환불을 요구했다. 항공사는 항공료는 전액 환불해줄 수 있지만 여행대금은 되돌려 줄 수 없다고 맞섰다.
연중 최대 여행 성수기인 휴가철이 돌아오고 있다. 휴가철마다 항공편의 지연 또는 결항으로 인한 항공사와 고객간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항공기가 예정보다 늦게 출발하거나 아예 결항돼 승객이 카운터에 격렬히 항의하는 모습은 휴가철의 익숙한 장면 중 하나가 됐다. 지난해에는 제스트 항공이 초유의 운항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한국인 관광객 1000여명의 이틀 가량 필리핀에서 발이 묶이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실제로 항공기의 결항이나 지연은 항공업에서 소비자들의 민원이 가장 많은 부분이다. 저가 항공사, 특히 외국계 저가항공사일 수록 그 피해가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항공사 관련 소비자 피해는 총 482건이었다. 이 가운데 대형항공사의 고객 피해는 186건인 반면 저가항공사는 296건에 달했다. 저가 항공사 피해 296건 가운데 209건이 외국계 저가 항공사를 이용한 승객들의 피해였다. 저가 항공사 관련 소비자 피해 총 296건 중 '운송불이행 및 지연'이 132건으로 전체의 63.1%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눈여겨 볼 점은 외국계 저가 항공사의 소비자 피해 209건 가운데 불과 30건(14.4%)만 원만히 합의가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A씨의 사례처럼 항공기가 6시간이나 지연됐을 경우 승객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통상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토대로 보상을 해준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항공사의 과실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이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서 ▲기상상태 ▲공항사정 ▲항공기 접속관계 ▲안전운항을 위한 예견하지 못한 조치 또는 정비 등 항공사 입장에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있다면 배상을 받을 수 없다. 즉 태풍, 폭우 등의 자연 재해처럼 항공사의 과실이 아닌 경우에는 배상을 받기 어렵다. 지난해 필리핀에 태풍 하이옌이 강타하면서 현지 공항이 폐쇄된 일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까지 항공사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다.
항공사도 항공편 지연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대체 항공편이 문제가 생긴 곳까지 날아가야 하고, 정상 운항 여부와 상관 없이 일정 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도록 한 안전 운항 관련 규정 탓에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교체해야 한다. 여기에 대체 투입된 항공기의 기회 비용을 감안하면 항공편 하나의 지연으로 수억원 가량의 손실을 입게 된다.
일부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약속한 시간에 비행기가 뜨지 못했으니 피해를 물어 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공사의 운송 약관을 찬찬히 살펴보면 '시간표 또는 기타 유인물등에 표시되는 시간은 예정에 불과한 것으로서 항공사는 대처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운항시간을 변경할 수도 있으며, 그 결과 운항시간표상의 운항시간은 보장될 수 없으며 항공사와의 운송계약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스케줄은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물론 대형 항공사의 경우 짙은 안개 등으로 비행기 이륙이 잠시 늦어지는 경우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식사 쿠폰을 지급하고 한 두시간 후에 돌아오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체 결함이라고 해도 모두 항공사의 과실인 것은 아니다. 항공사가 지정된 항공기 점검 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친 뒤 발생하는 기체 결함은 항공사 과실이 아니다. 정상적인 점검 절차를 준수했다는 것은 항공사가 입증해야 한다.
항공사의 과실이 있다면 그 다음으로는 도착 시간을 기준으로 운송이 지연된 시간을 따진다. 국내선은 지연 시간이 3시간 이내인 경우는 해당구간 운임의 20%, 3시간 이상인 경우는 운임의 30%를 배상해준다. 국제선은 보상 기준이 조금 복잡하다. 항공편이 아예 이륙하지 못하고 대체편이 뜬 경우 운항시간 4시간 이내의 노선에서는 100~200달러, 4시간 이상의 노선에서는 200~400달러를 보상해준다. 적정한 숙식비를 제공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항공사의 실수로 예약이 취소됐는데 해당 항공편 좌석이 매진인 경우 등도 여기에 속한다. 항공편이 단순 지연된 상황에서는 지연 시간에 따라 2~4시간은 운임의 10%, 4~12시간은 20%, 12시간 이상은 30%를 배상해주도록 하고 있다.
결국 항공편 지연으로 항공사에서 배상을 해준다고 해도 망가진 여행 일정까지 보상 받을 수는 없는 셈이다. A씨는 항공료를 전액 환불 받았지만 여행대금은 40%만 보상 받았다. A씨는 여행 당일 계약을 취소한 것이기 때문에 원칙상 여행 대금의 50%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항공편을 전액 환불 받은 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사실 A씨가 화를 참고 새벽 2시에 비행기를 탔더라도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은 36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A씨의 입장에서는 이래 저래 만족스러울 수 없는 결과다. 가격뿐만이 아니라 정시운항율 등을 꼼꼼히 따져서 처음부터 믿을 만한 항공사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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