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1979년 12.12 쿠데타가 일어난 당시, 미국이 우리 정부에 강력한 유감을 표해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의 외교문서도 공개됐습니다.
이현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1979년 신군부 세력이 주도한 12.12 쿠데타가 일어난 당시, 미국이 한국 정부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0년이 지나 공개된 1979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박동진 외무장관을 만나 한국 민간 정부를 전폭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군이 대대와 사단병을 자의로 이동해 한미 연합군의 군사적 유효성과 행동의 자유가 훼손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미 군부는 극도의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백악관의 최고위층까지 공통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홀부르크 미 국무부 차관보도 김용식 당시 주미대사를 불러들여, 군 지휘체계가 동요될 것을 걱정하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또, 이번 외교문서 공개로 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재외공관의 애도분위기도 전해졌습니다.
공관 직원과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위금을 모아 일본은 202만 5,000엔, 미국은 650달러를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970년대 환율을 고려하면 현재 통화가치로 엔화는 약 2,337만 원, 달러화는 약 164만 원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그 외, 79년 당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 미군 철수 문제 등을 두고 한미 간 갈등을 겪었던 내용도 공개됐습니다.
MBN뉴스 이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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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12 쿠데타가 일어난 당시, 미국이 우리 정부에 강력한 유감을 표해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의 외교문서도 공개됐습니다.
이현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1979년 신군부 세력이 주도한 12.12 쿠데타가 일어난 당시, 미국이 한국 정부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0년이 지나 공개된 1979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박동진 외무장관을 만나 한국 민간 정부를 전폭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군이 대대와 사단병을 자의로 이동해 한미 연합군의 군사적 유효성과 행동의 자유가 훼손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미 군부는 극도의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백악관의 최고위층까지 공통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홀부르크 미 국무부 차관보도 김용식 당시 주미대사를 불러들여, 군 지휘체계가 동요될 것을 걱정하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또, 이번 외교문서 공개로 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재외공관의 애도분위기도 전해졌습니다.
공관 직원과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위금을 모아 일본은 202만 5,000엔, 미국은 650달러를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970년대 환율을 고려하면 현재 통화가치로 엔화는 약 2,337만 원, 달러화는 약 164만 원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그 외, 79년 당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 미군 철수 문제 등을 두고 한미 간 갈등을 겪었던 내용도 공개됐습니다.
MBN뉴스 이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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