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비용의 공정한 부담'을 줄곧 주장해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마치고 떠나자마자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는 9일 방위비분담금 협상 전담대사를 내정하고 2019년 이후 '분담금' 협상을 위한 준비에 본격 착수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우리 측 수석대표로 "장원삼 주 스리랑카 대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주 중 장 대사가 공식 임명될 계획"이라 전했다.
전임 협상 수석대표(황준국·조병제·조태용)가 북미국장 중심의 '미국통'이었던 것과 달리 장 대사는 '동북아 국장'과 '중국 공사'를 역임한 중국통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이번 발탁의 주요 배경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미국도 국무부의 모 인사가 담당 대사로 내정됐다고 하는데 임명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은 내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연내에 양측간에 예비적인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 관계자는 "SMA는 매번 협상할 때마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며 "우리는 가급적이면 항목을 바꾸지 않는 게 좋지만 협정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한국이 시설과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대신 미군이 주한미군 운용비 전액을 부담하게 되어 있으나 1990년대부터 양국은 '분담금 특별협정(SMA)'를 체결하고 한국 측에서 주둔 비용의 일부분을 부담토록 해왔다. 한국이 부담하는 액수(분담금)는 주한미군 전체 주둔 비용의 절반 수준이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각종 미군기지 내 건설 비용, 군수 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쓰인다.
2014년 발효돼 내년 만료 예정인 제9차 SMA에서 정부 부담액은 전 협상 대비 5.8% 인상된 9200억원(2014년 기준)이었다. 첫해 분담금에서 시작해 2018년까지 5년간 전전년도 수비자 물가지수(상한선 4%)를 반영해 증가된다.
미국은 한국 분담분의 대폭적인 증액을 요구할 것이 유력해 보여 정부로선 쉽지 않은 협상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뿐 아니라,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전반적인 기여를 강조하며 합리적인 수준의 절충점 찾기를 도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 바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2%)을 넘어선 국방예산(2015년 기준 GDP의 2.35%)과 징병제 등을 우리 측 협상대표들은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이번 협상에서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강한 인상 압박 속에 분담금 '1조원' 선을 지켜낼 수 있을지를 관전 포인트로 보고 있다.억 단위에서 '조' 단위로 정부의 부담액이 늘어나면 "미국에 퍼주기를 했다"는 국민의 부정적 여론이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차 협상에서도 정부는 이런 점에 주목하며 미국과 10여 차례 정부 부처간 30여 차례의 회의 끝에 9000억원 대에서 분담금 협상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변수는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정부가 92%의 비용을 부담한 평택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 대해 "미국도 많은 부분을 지출했으며 이는 한국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동맹의 비용을 분담한다는 큰 틀에서 보면 캠프 험프리스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 효과가 방위분담금 협상에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방위비분담금은 한미간 관계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큰 액수가 아니다"며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부담한다는 원칙 아래 협상하되 동맹 관계에 악영향을 줄 정도로 공격적 협상은 지양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이 앞두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민감 현안을 감안해서라도 방위비분담금 때문에 소탐대실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안두원 기자 / 박태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