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한지 한 달 가량 지난 문재인 대통령이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 리더십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내부적으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 강행으로 인한 야당 반발로 국회 파행이 계속되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 개선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배치 논란에 따른 미국 정부의 우려가 커지면서 외교 행보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20일 미국인 오토 웜비어 사망과 관련해 북한에 "개탄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한 데는 한미관계 균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위기감이 깔려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가 새 정부의 초기 성적표를 결정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야 강 장관 임명 강행도 합격점을 받을 수 있고, 한미 공조 강화라는 성과를 얻어야 임기 초반 국정운영 동력 확보가 수월해질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19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이날 밤 미국 CBS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미국 여론을 설득하는데 총력전을 펼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같은 악재 속에서도 대화·제재 병행이라는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남북문제는 한반도가 주도해 해결해나가야한다고 강조한만큼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도발 위협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제재는 철저히 이행할 것이라면서도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남북관계 단절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대화와 관련해 북한이 아직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이런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북미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할수록 북한과의 관계 개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1991년 노태우 정부에서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이후 역대 정부의 남북 관계는 북미 관계에 영향을 받아왔다.
북한은 '통미봉남' 정책을 추구하며 한국을 지렛대로 삼아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체제 보장을 정권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웜비어 사망으로 북미 관계가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를 통해 얻을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민간 교류와 인도적 지원으로 양국 관계의 점진적 개선을 원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적극적 지지 속에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미국에 공화당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후 햇볕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강경 신보수주의자(네오콘)가 장악하고 있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 지칭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은 표류했고 6자 회담이 자리잡기까지 한미간 불협화음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북한에 대한 들끓는 자국내 여론을 고려할 때 북한과 대화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럽게 됐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웜비어의 사망이 한미 정상회담에 악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인권을 외면하는 북한 행동에 대해서 규탄하는 것은 한미의 공통된 입장이다.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 예상치못한 부분을 치고 들어오는 협상 스타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미 조율된 한미정상회담 논의 주제와는 별개로 이 문제에 대한 해법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만큼 문 대통령이 최근 꺼내든 '추가 도발 중단 시 조건없이 대화' 카드를 잠시 자제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과 '조건없는 대화'에 나설 경우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국제사회 공조를 기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남북관계 '대화파'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남북관계 긴장감은 상대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는 "북미 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현 정부가 움직일 외교 공간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면서도 "웜비어 사태가 악화될지 아니면 북한이 억류 중인 남은 미국인 3명을 풀어주며 북미간 대화 계기가 마련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웜비어 사태가 지난 1977년 만 13세의 나이로 북한에 납치된 사망한 일본 여학생 요코다 메구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쿠미 납치 사건은 지난 40년간 북일 관계의 최대 악재로 작용하며 현재까지도 양국 관계 정상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정석환 기자 / 안병준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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