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면서 혁신위원회 구성을 준비하는 ‘투트랙 전략’을 채택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결국 친박계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12일 강하게 반발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혁신안 마련으로 인해)마누라 빼고 다 바꿀지 두고 봐 달라”고 천명하며, 당 쇄신을 위한 혁신위 역할을 결코 등한시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상임고문단과의 오찬에서 당 고문들이 “당 대표를 가급적 일찍 선출해 전권을 맡기는 게 낫다”고 지적하면서 정 원내대표의 고민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섞어앉기를 제안하며 국회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던 정 원내대표 역시 당내 계파 대립에 함몰되는 형국인 셈이다.
이날 정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혁신위에 당 쇄신의 전권을 주겠다는 내용의 혁신안은 새 지도부가 출범하더라도 언터쳐블(손대지 못함)”이라며 “당선자 총회를 통해 의견을 총합한 결과 투 트랙(병진노선)으로 가자는 게 70%였다. 투 트랙은 땜질식 미봉책이 아니고, 새누리당의 재창조를 통한 정권 재창출을 위한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이어 “마누라 빼고 다 바꿀지 아느냐?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며 현재의 당 쇄신 노력이 친박계에 의해 의도된 결과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정 원내대표는 또 총선 참패 책임론을 친박계 전체에 전가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새누리당에 친박이 70~80명 되는데 그 사람들이 다 책임이 있느냐”며 “떼로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 했나? 그건 아니지 않느냐. 그렇게 덤터기 씌우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이어 “계파 어느 한쪽에만 책임을 묻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함께 책임을 느끼고 다시 일어서자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특히 친박계가 막후에서 원내지도부 인선 등에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데 대해 “가소로운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내가 계파 얘기 듣는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계파가 무의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를 투트랙으로 운영하는 것이 결국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란 듯이 넘어갈 상황은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며 “새누리당 간단하게 안 죽는다. 두고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날 정 원내대표을 비롯해 신임 원내대표단과 오찬을 함께 한 새누리당 상임고문단은 그의 다부진 각오를 높게 평가하긴 했지만, 전당대회가 늦어지는 데 대해선 우려감을 나타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정 원내대표의 훌륭한 경륜을 듣고 용기와 격려를 보냈다. (정 원내대표가)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나는 스피드를 내라고 조언했다”라며 “전당대회를 빨리하고, 전당대회를 통해 뽑은 당 대표가 실권을 갖고 당을 개혁하고 좋은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의장은 “내가 지난 번에도 문제는 스피드라고 했다”며 “총선 끝난지 벌써 한달이 넘었는데 벌써 이렇게 지도부 체제 안 갖춰져서 되겠느냐”며 질타했다. 그는 혁신위원장의 외부 영입에 대해 “외부라고 해서 별 사람 없다”며 “정치판에 어디 편작(중국 고대의 전설적 명의)이 있느냐. 만병을 고치는 뛰어난 명의는 없다”라며 “오히려 당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 중에 뽑으면 되는거지”라고 내부 기용이 낫다는 뜻을 내놨다.
비대위 겸임과 혁신위 구성 뒤 전당대회라는 일정에 대해 비박계는 한층 강도높게 비판했다. 새누리당 쇄신파 의원 모임 ‘새혁모(새누리당 혁신모임)’ 소속인 하태경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비대위원장은 전국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전국위원회에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정진석 체제가 원유철 전 원내대표 당시 있었던 시행착오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며 “당시 원 원내대표가 저항에 부딪친 것이 원유철 비대위로 가려고 했기 때문인데 지금하고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혁신위에서 아무리 좋은 안이 나와도 비대위에서 통과가 안 될 수도 있다. 혁신을 밀어붙일 기구에 권한을 안 주고 격하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환 기자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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