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4일 공천 배제를 결정한 이해찬 의원은 '친노 좌장'을 자임하는 6선 관록의 중진 의원이다.
이 의원은 재야 운동권과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서 두루 활약했던, 한국 야당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그의 공천 배제는 '한국 야당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시대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넘어 전통적 야당 프레임을 넘어선 새판을 짜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정세균계 이어 이해찬까지 퇴출
이 의원은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투옥됐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았다. 이후 문동환·박영숙 씨 등 재야 인사 중심의 평화민주연구회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1988년 13대 총선 서울 관악을에서 당선됐다. 30대 정치신인이었지만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한 김 대표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평화민주당 시절 당시 김대중 총재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그는 국민의정부 출범 이후 초대 교육장관을 맡아 교원 정년 단축, 두뇌한국(BK21) 사업 등 교육 개혁을 추진했다. 이후 2002년 대선에서는 선거기획단장을 맡아 노무현정부 탄생에 기여했으며 탄핵 정국 이후 '실세 총리'를 맡아 국정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무현재단을 출범시키면서 실질적인 친노 그룹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이 의원 공천 배제는 '친노 패권주의 청산'이라는 일차적 의미가 있다. 김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컷오프 등을 통해 현역 의원 물갈이 작업을 지속해 왔지만 일부 정세균계 의원들과 정청래 의원 등 범친노 의원들만 타깃으로 삼아 '변죽만 울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비판에 부담을 느낀 김 대표가 '친노 좌장'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이 의원을 직접 공천에서 배제하는 초강수를 선택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의원 공천 배제 결정에 대해 김 대표는 14일 "정무적 판단은 정무적 판단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정무적 판단'의 실질적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 친노진영 "자의적 기준" 반발
이해찬 의원은 공천 배제 결정에 대해 "선거활동을 예정대로 해나가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상 재심청구를 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의중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이날 세종시당사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나는 평화민주당 때부터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시작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더불어민주당의 적통"이라면서 "김종인 대표의 아픈 기억에 대한 사심이 작용한 오판이자 정치보복이며 당의 구심점을 없애서 멋대로 해보겠다는 계산"이라고 비판했다.
친노 진영에서도 '좌장격'인 이해찬 의원의 공천 배제에 대해 반발이 이어졌다.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김경협 의원은 "의정활동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나이를 먹었다거나 선수가 많다고 용퇴론을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의원 보좌관 출신인 서울 관악을의 정태호 후보도 "3선 이상 하위 50%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컷오프 대상도 아닌데 정치적 기준으로 정했다고 한다면 누구나 의문을 가질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노 진영이 눈앞의 선거를 앞두고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문재인 전 대표와 교감 가능성도
김경협 의원은 "잘못된 결정이기는 하지만 또다시 당을 쪼갤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일단 재심 신청 등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노 일각에서는 이해찬 의원이 용퇴해 후배 친노들의 길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대표적 부산 친노 인사인 최인호 전 혁신위원은 "이해찬 의원이 백의종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됐지만 전해철·윤호중·홍영표·김태년·김경협·박남춘 의원 등 친노 직계 의원 대부분은 공천 배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문재인 전 대표가 이 같은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동조'로 해석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민주 관계자는 "이해찬 의원이 친노의 좌장이지만 친문재인은 아니지 않았냐"면서 "문 전 대표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침묵이 또 다른 차원의 동조 메시지로 읽힐 개연성도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박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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