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한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재선·인천 남구을)의 막말로 집권 여당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가운데 파문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당사자인 윤 의원과 친박계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김 대표는 윤 의원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채 특유의 ‘침묵 시위’에 돌입했다.
살생부 파문에서 수세에 몰렸던 비박계는 윤 의원의 정계은퇴까지 요구하면서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분위기다.
파문의 당사자인 윤 의원은 9일 오전 11시께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을 예고없이 방문했다.
그는 30분 가량 대표실 안에 머물며 면담을 계속 요청했으나 직원들의 제지로 끝까지 김 대표를 만나지 못했다. 김 대표는 윤 의원을 외면한 채 옆문으로 대표실을 나와 차량에 탑승할 때까지 기자들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문전박대를 당한 윤 의원은 “일단 대표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어제 (김 대표에게)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셨고, 진의를 말씀드리러 왔는데 대표께서 옆문으로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막말을 하게 된 정황에 대해 “살생부 때문에 너무나도 격분했고, 지역에 있는 분들과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여러 하소연을 했는데 이런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막상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사실상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는“정말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술을 마셔서 누구와 대화했는지(기억이 안난다)”라면서 “공관위원들한테 전화해서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인사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윤 의원은 “취중에 사적인 대화까지 녹음을 해서 언론에 전달한 행위는 의도적인 음모”라고 주장했다. 녹음을 한 사람은 인천 지역의 당 관계자라고 전했다.
기억이 안날 정도의 ‘취중 실언’이라면서도 공천관리위원이나 청와대 관계자는 아니라고 주장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녹취록을 입수했던 한 언론사는 통화 상대가 윤 의원이 ‘형’이라고 호칭한 친박계 의원이라고 보도했다. 당내에선 친박계 핵심 실세인 A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 8일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윤 의원은 지난달 27일 누군가와 통화에서 “김무성 죽여버려. 그런 XX 솎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과거 ‘누나’로 불렀던 친박계 의원이다.
그동안 친박계 공세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던 김 대표는 막말 파문에 일단 ‘묵언’으로 대응하며 반격 시점과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 직접 대응하지 않아도 비박계가 이전보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와 가까운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은 이날 “이보다 더 작은 막말도 (공천에 문제 있는지)심사를 하고 있다”며 “윤 의원이 정계를 스스로 은퇴하든지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박계인 이재오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윤 의원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김 대표를 죽여버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이라며 “또 (윤 의원이)‘다 죽여’라고 하는 ‘다’에 언론에서는 괄호하고 비박계라고 써놓는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 밝히고, 안되면 의원총회를 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박계는 윤 의원 사과를 통해 사태 봉합에 애쓰면서도 ‘음모론’을 거듭 주장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당사자인 윤 의원이 김 대표를 직접 찾아와 사과하고, 당원들에게도 사죄해야 한다”면서도 “김 대표가 통 크게 (사과를 수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사적인 대화를 녹음하고 공개했는데 무슨 공작도 아니고, 이런 일은 앞으로 벌어져서는 안된다”며 녹취록 공개가 음모라는 윤 의원의 주장을 거들기도 했다.
조원진 원내수석은 “윤 의원이 직설적이기는 했지만 본인이 자숙하고, 바로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있다”며 “(김 대표 공천배제는) 개인 생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진상조사가 먼저”라며 중립적 입장을 보였다.
한편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뜻을 받아들여 당초 당원 30%·일반국민 70%였던 경선 기본원칙을 사실상 폐기하고 100% 국민 여론조사를 기본 룰로 삼는 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 지역에서 100% 국민 여론조사가 실시될 것으로 보여 정치 신인들에게 다소 숨통이 틔이게 됐다. 이 결정에는 ‘유령당원’등 당원 투표의 형평성·공정성 논란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명환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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