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급속도로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20대 총선에 미칠 영향을 놓고 여야가 복잡한 손익 계산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과 국민의당 등 야권이 일차적으로는 좌우 프레임이 분리돼 보수 세력이 결집하는 것을 경계하는 모양새지만, 총선을 앞두고 정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야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는만큼 당분간 엇박자가 지속될 전망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11일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에 입을 모아 비판했다. 그러나 한목소리를 내는 것과는 달리 더민주와 국민의당 모두 내부적으로는 총선에 미칠 영향에 대한 복잡한 셈법 탓에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국민의당은 ‘안보는 보수’라는 안철수 당 공동대표의 기존 방침과는 달리 영입인사들을 중심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이 쏟아지면서 혼선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안 공동대표의 ‘전문가 영입 1호’인 김근식 국민의당 통일위원장은 10일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에 “실효성 없는 자해적 제재”라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은 즉각 수정자료를 내고 ‘자해적 제재’를 ‘제재’로 수정하고, ‘감정적 결기 과시’ 등의 표현을 삭제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혼선 속에서도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의 ‘북한 궤멸’ 발언을 연일 비판하며 더민주와 각을 세웠다. 김정현 국민의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안보 무능과 남북관계 파탄 책임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북한의 궤멸을 이야기한다면 제1야당의 수장으로서의 자격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자칫 정부의 방침에 동조했다가 더민주로부터 ‘새누리당 이중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만큼 차라리 ‘제1야당’을 놓고 경쟁할 더민주를 비판함으로써 지지를 얻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북한 궤멸’ 발언을 시작으로 ‘우클릭’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더민주는 11일 다시 정부로 화살을 돌렸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날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선거를 앞두고 북풍 전략에 씌어서 하는 것 아닌가 의심마저 들게 한다. 개성공단 폐쇄가 아니라 일시적 전면 철수로 빨리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개성공단 중단 결정으로 한반도는 더욱 위험해졌다”며 “냉정한 전략적 판단이 절실한데도 정부는 즉흥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개성공단을 중단시키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고 밝혔다.
한 야권 관계자는 “여권이 남북관계 악화를 총선에 적극 활용하지 않겠느냐”며 “정부 비판 수위를 높여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을 이어가는 동시에 기존 지지층을 결집시킨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은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결정이 필수불가결한 조치였음을 강조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해 국민적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안보 이슈를 선점해 보수층 표심 집결을 노리겠다는 포석이다.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는 “북한의 극단적인 도발은 안전을 위협하는 정면 도발이며 용납할 수 없다”면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은 불가피하고 안보 강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이익도 감내하고 누구 눈치도 볼 것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동시에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정부에 촉구하며 자칫 총선에 역풍이 부는 것을 경계했다. 김 대표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개성공단 중단 결정이 선거에 크게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관계 악화라는 돌발 변수 앞에 전문가들 분석 역시 엇갈렸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보위협이 커지면 보수정당이 유리하다는게 정설이지만 총선에는 북한 문제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적이 없다”며 “북한이 더욱 강경한 태도로 나와 안보 위협이 더욱 커지면 중요한 이슈가 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총선의 중요한 변수가 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남북 이슈는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하지만 이념적 대립 구도로 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북한의 추가도발 강도에 따라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16대 총선에서는 선거를 불과 3일 앞두고 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하면서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맞서 정당 득표율이 15대 총선보다 무려 10.6%p 오르기도 했다. 19대 총선에서는 선거 3일 전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공개했고, 이로 인해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의석수 과반 이상을 확보하는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전국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져 정부가 개성공단 제재 등을 골자로 한 5·24 조치를 발표해 정권심판론으로 불리한 선거 국면을 전환시키려 했지만 ‘역풍’을 맞아 야권의 승리로 돌아간 바 있다.
[정석환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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