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출범 4년째에 접어든 북한에서 ‘시장’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 내부에서 진행된 시장화는 주로 생계를 위한 생필품, 일용품 중심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는 시장을 통한 부동산 거래도 크게 늘었다. 시장을 통해 고액 자산이 거래·유통되며 차원이 다른 자본계급들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이 직접 주택 소유권 자체를 거래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모든 주택은 국가 소유다. 대신 사람들은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증이자 사실상 소유권으로 인정받는 ‘입사증’을 거래한다.
최근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최모 씨는 “현재 북한 사람들은 주택을 거래하는 시장 이름을 ‘해빛(햇빛)동’ 혹은 ‘해빛마을’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해빛’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중개인들이 4계절내내 하루종일 햇볕이 내리쬐는 밖에 서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뚜렷하게 사무실을 갖추지 않고 ‘떳다방’식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개 중개인들은 한 지역에 수십 명씩 모여서 주택거래를 중개하고 있어 ‘동’이나 ‘마을’로 부른다.
이들 중에도 이른바 ‘돈주 아파트(‘돈주’들이 지은 고급아파트)‘만 중개하는 거물 중개인들도 있어 큰 돈을 움직이기도 한다. 한국식으로 치차면 서울 강남 부동산만을 취급하는 중개업자와 비슷하다.
평양 시내에서 부동산 중개인들이 거점으로 삼고있는 대표적 지역은 대동강변에 위치한 선교구역이다. 특히 이 지역의 국수집인 ‘선교각’은 중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주택수수료는 팔고 사는 쪽에서 모두 주택가격의 2%를 낸다. 서울 지역의 부동산중개 수수료율이 통상 0.5%임을 감안하면 4배나 비싼 셈이다.
주택가격을 결정짓는 요인에는 북한이 처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다. 주택가격은 주로 역세권(평양은 전철역, 기타 지역은 철도역)인지, 도둑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는 위치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우물이나 펌프가 있어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도 주택가격을 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특이한 것은 북한 아파트의 로열 층은 남한처럼 조망권이 좋은 고층이 아니라 2~3층이다. 평양 시내조차 걸핏하면 정전이 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저층이 인기라는 것이다. 단 1층은 방범 문제가 있어 주택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한다.
[김영희 명예기자(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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