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이 언제부터인가 국민 관심에서 사실상 멀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언론은 국감장에서 나온 얘기 하나하나를 보도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잘 와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국감이라는 것이 행정부의 1년 살림살이를 감사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자리이지만, 요즘에는 국민의 관심을 끌 만큼의 폭로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국감이 국정감사라는 본질과는 멀게 망신주기나 흠집내기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국감장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당 의원들이 이런 저런 서울시정을 따져 물었지만, 서울 시정과는 무관한 질의도 많았습니다.
특히 아들의 병역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은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 인터뷰 : 정용기 / 새누리당 의원
- "(아들의 병역의혹을 보도하거나 제기한 언론사와 누리꾼 등을 고발한 데 대해) 그런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해야지 법적으로 고발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 인터뷰 : 박원순 / 서울시장
- "제가 야당 출신 시장인 만큼 그런 비리가 정말로 있었다면 병무청, 경찰, 검찰이 여섯 차례나 공개적으로 (비리가 없음을) 확인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아들의 병역 의혹 제기)이 그야말로 '박원순 죽이기'라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 이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받고 힘들겠냐. 여기서 이렇게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박 시장은 여당 의원들이 아들의 병역 의혹을 제기한 것이 국정감사와는 무관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말 무관할까요?
서울시장의 직계가족이나 친인척 문제는 국정감사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 특혜를 받거나 어떤 의혹이 있다면 국회의원들이 마땅히 물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의혹이 합리적이냐는 전제가 필요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은 보편 타당함을 기반으로 하지만, 요즘은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여당 의원들은 박 시장 아들의 병역의혹이 합리적인 문제제기라고 보지만, 박 시장은 아니라고 보는 모양입니다.
국정감사장에서 박 시장이 곤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보수 단체들이 박 시장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 인터뷰 : 오늘 서울시청 앞 어버이연합 시위
-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이때까지 패거리 정치, 무능 정치, 파벌 정치, 배신의 정신, 자기 이익 정치에 비리 연루가 되고 자기 아들의 병역 비리에 대해 국정감사에서는 이걸 놓치지 말고 확실히 규명해서 헌법에 준하는 법으로 처리를 해줘야 합니다."
아들 병역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그렇고, 보수단체가 시위하는 것도 그렇고, 국감장에 선 박시장을 서울 시장이 아니라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대표는 당 내분으로 스스로 위상을 떨어졌고, 안철수 의원은 이미 저 밖으로 밀려났고, 남은 야권 인사는 박원순 서울시장 뿐입니다.
당연히 여당과 보수단체의 집중적인 공격이 쏠릴 수 밖에 없습니다.
▶ 인터뷰 : 조원진 / 새누리당 의원 (오늘 국감)
- "아리수 물이 말이죠. 전임 시장 때는 이거(아리수) 절대 먹어선 안 되는 물이었거든요. 근데 시장 바뀌니까 아리수 물이 먹는 물이 됐어요. 아리수 물이 요술 물이에요. 요술 물!"
▶ 인터뷰 : 박원순 / 서울시장 (오늘 국감)
- "조 위원님, 제가 국무회의에 가보니깐 국무회의서도 먹던데요. "
▶ 인터뷰 : 조원진 / 새누리당 의원 (오늘 국감)
- "정치권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 인터뷰 : 박원순 / 서울시장 (오늘 국감)
- "아리수 물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오늘 국감장에서 눈길을 끈 사람은 또 있습니다.
바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입니다.
의원들은 롯데그룹의 정체성과 지배구조를 따져 물었지만, 세인들의 관심은 신 회장이 얼마나 한국말을 잘할 지에 쏠렸습니다.
▶ 인터뷰 : 신동빈 / 롯데그룹 회장 (오늘 국감)
- "(왕자의 난이 끝났습니까?) 네, 끝났습니다."
▶ 인터뷰 : 김영환 / 새정치연합 의원 (오늘 국감)
- "다시 여진이 있거나 제2차 왕자의 난이 생겨서 경영권 분쟁이 다시 생길 소지가 없습니까?"
▶ 인터뷰 : 신동빈 / 롯데그룹 회장 (오늘 국감)
- "그럴 가능성 없다고 생각합니다. "
▶ 인터뷰 : 김영환 / 새정치연합 의원 (오늘 국감)
- "지금은 일본기업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정체성 논란이 계속 되는데…."
▶ 인터뷰 : 신동빈 / 롯데그룹 회장 (오늘 국감)
- "먼저 호텔 롯데를 비롯한 한국 롯데그룹의 모든 것은 대한민국 기업입니다. 심려 끼쳐 드린 점 진짜 부끄럽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10대 재벌 그룹 회장이 국감장에 증인으로 나선 건 처음입니다.
증인으로선정돼도 대부분 불참하면서 벌금을 내는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왕자의 난 사태로 악화될 대로 악화된 기업이미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감장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눌한 한국말에도 불구하고 의원들 질의를 놓치지 않으려는 신 회장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국감장에 설 충분한 이유는 있었지만, 의원들이 기대했던 것 만큼 충분한 답변을 들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고의가 아니라 한국말 때문입니다.
이쯤되면 신 회장을 국감장으로 부른 건 어쩌면 망신주기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모습이 반복되면 국감에 대한 국민 신뢰는 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감은 정치 공방의 장이 아니고, 정부 감시의 장입니다.
내년에는 그런 국감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