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 언제 뵈도 씩씩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요즘도 힘이 넘치시죠?
-그렇습니다.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앞에서 얘기했는데요. <베를린> 보셨나요?
-보진 못하고 줄거리는 대충 들었습니다.
▶ 남파공작원을 소재로 한 영화가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판넬을 준비했습니다. 사진을 보니까 김영대 보좌관이시죠? 제일 끝에 서 있는 모습이 대장 같아요?
-그 중에서는 제일 대장이었습니다.
▶ 실제 대장이셨군요.
-지휘조장이라고 불렸습니다.
▶ 북파공작원의 비화에 숨어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이 자리에 모셔서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로 근방은 지뢰천지, 지역을 벗어나면 죽는다. 이게 언제 적 이야기입니까? 훈련과정에서 이야기 입니까?
-저희들이 물색조라는 분들한테 개별접촉에 의해서 포섭되어서.. 기초양성소가 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면 저희들을 가르쳐야 될 분들이 저런 말을 제일 먼저 던집니다. A코스 B코스 C코스를 제외한, 길 같은 코스를 벗어나면 지뢰가 깔려있어서 자칫 죽을 수 있다. 뛰어야 되는 통로 외에 1m 이상을 벗어나면 죽는다고 얘기하는 거죠.
▶ 사방에 실제 지뢰가 깔려있나요?
-저희들이 양성되어서 바로 기성공작대로 가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진 못했는데 아마 엄포용이었을 겁니다.
▶ 영화를 보면 지뢰를 밟았다가 극적으로 제거하는 장면들이 있잖아요. 실제 그런 훈련들이 받습니까?
-그것이 우리 훈련 3분의 2일 정도로 공을 들인다고 보면 됩니다. 비무장지대 안에 아군과 적군이 깔아놓은 침투장애물로 지뢰가 장마가 되면 떠내려 올 정도로 깔려 있기 때문에 그것을 돌파해서 적지도 들어가기 위해선 지뢰 제거는 기본이죠.
▶ 지뢰제거 하다가 잘못으로 터지면 사상자가 나올 수 있잖아요.
-우리 쪽에서 사상자가 나면 우리가 데려오지만 적지에서 사상자가 나거나 비무장지대 내에서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북한 지역이면 판문점에 갖다놓고 가져가라고 해도 우리는 부인하죠. 안 가져오고 인정도 안하고.
▶ 침투한 사실을 인정하면 안 되니까?
-하면 안 되죠.
▶ 공작원이 되기까지 나름대로 다양한 사연들이 있을 것 같아요. 한 분 한 분 다 사연들이 있을 텐데 김영대 보좌관께서는 어떤 사연으로 어떻게 해서?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가정 사정상 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못하고 다니다 말다를 반복하다 결국 무위도식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20세 때인데. 동네가 동대문 쪽인데 약간 우범지역 동네여서 어느 날 물색조라는 분들이.. 나중에 물색조라는 것을 알았죠.
▶ 물색 조는 그런 대상들을 찾아다니는, 말 그대로 물색 조?
-찾으러 다니는 사람입니다. 우범지역이든 운동하는 사람들이든 자기들이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모이거나 눈이 보이는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개별접촉으로 조건을 제시하죠. 돈을 벌게 한다든지 나중에 직업을 보장한다든지 만약 우리가 가서 죽거나 다치거나 거기에서 근무하는 동안 가족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들을 하면서 저희들을 포섭하는 거죠.
▶ 귀에 솔깃한 약속들을 하는 군요?
-그렇습니다.
▶ 이른바 물색 관들이 보면서 다닐 때 한 주먹 한다든가 덩치도 좋아야 하고. 우리 김 보좌관도 동대문에서 날리셨어요?
-그때 당시 태권도 4단 정도 되었으니까요. 제가 을지로에 있는 한국 체육관에서 권투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봐도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겠죠.
▶ 양성소에 도착하기 전까진 북파공작원이 된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다면서요?
-모르죠. 간혹 들은 얘기로 선배나 후배, 동네 사람들, 그 중에 어렴풋이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모릅니다.
▶ 막상 가보니까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죠. 그 전에 우리 동네 선배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 사망한 선배가 있는데 그런 선배를 통해 어렴풋이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는 들었지만 모르고 갔죠. 가서 깜짝 놀라죠. 1공작대, 2공작대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것을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수수깡으로 안경도 만들도 곤충도 만들어 보듯 그런 공작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 처음에는? 그러니까 전혀 생각을 못했군요?
-처음에는 생각을 못했죠.
▶ 북파 공작원의 비화 두 번째. 자폭도 각오하라?
-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인권 유린 적이고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응을 상당히 어렵게 만들었던 세뇌 교육 중에 하나였는데 적지에 들어가서 자기가 부상을 입어서 임무수행을 계속 하기 곤란하면 자폭하라고 교육하고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세뇌 교육을 합니다. 그리고 동료도 마찬가지로 부상을 입거나 동반 임무수행이 곤란하면 자폭을 권유하라고 합니다. 권유하라고 하지만 사실 죽이라는 얘기에요. 동료가 동료를 살해해야 합니다. 북한군도 똑같은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96년도 강릉에 잠수함이 들어왔을 때 11명 대원들을 전부 쏘아 죽은 걸 봐선 그 사람들이 죽음을 스스로 감수했고. 남북한이 비슷했습니다.
▶ 그렇다면 실제 그런 사례도 있겠네요. 같이 침투했다가 동료가 부상당해서 못 내려올 경우?
-당연하죠. 거기서 공개하지는 않겠지만 더군다나 동료가 동료를 죽인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하겠습니까. 기본 철칙이니까요.
▶ 주입식 이른바 충성교육, 세뇌교육이 굉장히 강했겠어요?
-강하고 장기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합니다. 나중에는 서로 죽어야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이 내 소임인 것으로. 그래야 자랑스러운 것으로 이렇게 점점 생각이 바뀌어 가는 거죠.
▶ 북파 공작원이 아침저녁으로 외쳐야 될 3가지 신조가 있었다면서요. 그게 어떤 겁니까? 예를 들어 군가처럼 기억을 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다 외워지죠. 죽을 때까지 잊혀 지지 않을 내용이죠.
▶ 뭡니까?
-우리가 신조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내용을 외워볼까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의리에 살고 불의에 목숨 건다. 음지에서 싸워 이기고 양지에서 영광을 누린다. 마지막이 중요한데 그것이 국가 약속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마지막 대목이 의미가 있는데요. 음지에서 싸워 이기고 양지에서 영광을 누린다. 실제 그렇게 됐습니까?
-아니죠. 백 프로 안됐습니다.
▶ 그래서 화가 나는 거 아닙니까?
-화도 나고 분하기도 하고. 겨우겨우 대화를 요청하고 과격한 의사표시도 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실체 인정 법 개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역차별적인 보상 시행이 있었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안 한 것만 못했다는 박탈감을 느끼해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민주화 유공자라고 인정을 받아서 13~14억 까지 배상을 받는 정도까진 못할지라도 국가배상 최소 기준, 사망자 기준 5억 8천의 기준으로 시작해야 할 것을. 저희들은 적지에서 8천명이 죽었습니다. 가족들도 50년 동안 전사통보도 없이 세월을 묻었기 때문에 부모들도 다 죽고 없어요.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보상을 타는 대상자가 없습니다. 8천 명 중에서 1~2천 명에 지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대상자가 있든 없든 단 한명이라도 나타나면 법 연장을 시켜서라도 보상을 시행해야 하고 역차별적인 것을 개선해서 국가가 대안을 제시해야 되거든요.
▶ 전체 8천명이나 죽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북파를 시킨 것이 최종 집계로 보면 1만 4천 명 정도 됩니다. 그 중에서 죽거나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8천명입니다.
▶ 그런데 아직 제대로 보상은 안 되어있고?
-받을 사람이 없으니까 하는 것도 없거니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보상기간을 종료시켰어요. 대상자가 나타나도 신청을 못하게 했다니까요. 이것을 연장해달라고 청원해서 발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부처 어느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콧김을 세우는지 모르지만 작년 11월에 발의한 것을 지금까지 심의하고 있습니다.
▶ 그야 말로 하나의 소모품이었다? 국가를 위해 싸웠고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보상을 제대로 해야 된다?
-그렇습니다. 학자들께서 이 문제를 가지고 발표하시는 논리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보면 국가의 불법이고 탈법이고 인권유린이지만 국익을 위해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보상을 상의해야 된다고 보상시행 전에도 논리적으로 학술 발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듣는 척도 안합니다.
▶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좀 더 많은 분들이 알기 위해서 얘기를 계속 나눠봐야 될 것 같아요. 북파공작원 비화 세 번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라. 엄청난 지옥훈련을 연상시키네요?
-그렇습니다. 보편적으로 일반 군과 특수 전 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비교해서 우리도 그 정도 훈련을 했다는 분들이 있는데 실질적으로 거기서 우리가 한 훈련이나 우리 후배들을 가르칠 때의 강도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가혹하고 혹독한 훈련을 시킵니다. 인간의 땀 한 방울까지도 다 뽑아낼 정도로. 일주일 중에 삼 사흘 하고 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일요일도 없이 365일 이것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하거든요. 능력이 목표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합니다.
▶ 그 당시에는 김영대 보좌관도 살이 없었죠?
-살이라곤 정말 없었죠. 다음에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가 25~30kg 모래배당을 매고 2~3m 경사진 높은 곳에서 뛰는, 2~3m 소나무를 뛰어 넘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숙련이 되고. 사격이나 이런 것도 기계적이고 조건반사적으로 합니다. 또 눈치만 봐도 이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것인지. 그러니까 기계적이고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 사격도 스나이퍼 수준이었겠네요?
-우리가 지향사격이라고 보지 않고 쏘는 등 32개종을 교육 훈련 합니다. 그것이 완벽하게 기계처럼 떨어져야 돼요.
▶ 훈련을 빙자해서 가혹행위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심리적이거나 육체적으로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혹행위거나 이것에 감정이 실렸다고 오해하거나. 사실 그런 경우도 있겠죠. 그 과정 자체가 가혹합니다. 빵바레나 빠삐용 얘기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적지에 들어가서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인내심을 키우거나 이러기 위해서..
▶ 얼음물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있다면서요.
-그것은 연습 삼아 계속 하는 거니까요. 거기 가서 몇 번 반복하면 머리고 눈썹이고 입술이고 고드름이 생길 때까지 합니다.
▶ 몸이 버팁니까?
-훈련을 수도 없이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견딥니다.
▶ 그러다보면 실제로 자살 하는 사람도 있겠어요.
-자살은 육체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것이 강해서 심리적 요인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사회에서 최소 3년 최고 5~6년 외부하고 일체 단절된 밀봉 상태거든요. 그리고 예비적 지령이 계속 내려와 있습니다. 계획만 떨어지면 바로 임무수행이에요. 북파공작원도 인간인데 생명위협에 계속 노출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까 정신적 요인 때문에 자살률이 높고 훈련 중 사고사는 다반사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일입니다.
▶ 몇 번이나 침투하셨어요?
-저는 3번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명령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희들은 지령이라고 합니다.
▶ 북한군이 훈련을 지난해부터 상당히 늘린다고 해요. 실제 사격 량도 늘고 비행훈련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무자비한 훈련을 받은 장본인으로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떠세요?
-그쪽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우리도 긴장을 놓치지 말고 철저히 대비를 해야 됩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걸려 있고 국가의 안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정보와 첩보는 전면전이 일어나기 전까진 상시 전쟁을 하고 있는 기능들인데 이 기능들을 약화시킬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개선할 것은 하더라도 지원도 더 늘리고 활동도 영역을 넓혀서 많은 활동을 하게하고. 물론 국내 정치에 개입하라는 것이 아니고 대북 국제적으로. 이렇게 해서 충분한 억제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 북한에도 특수 부대가 많이 있잖아요. 실제 실력은 어떨 것 같아요?
-저도 얼마 전에 41년 만에 제가 훈련했던 곳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우리 젊은이들이 정신력도 강하고 자질도 우수하고 많이 배우고 운동도 많이 하고 우수한 자질이 우리 때보다 좋은 환경 속에서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 북한군과 실제 맞닥뜨려서 싸운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북한군 소위가 월남을 했었어요. 그 사람을 데려다가 제식훈련도 배우고 총검술을 배우기도 하고 대련도 해보고. 또 80년대에 전충남 이라고 하는 사람이 다대포에서 생포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도 상당히 우수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공작원들인데 우리 애들과 대련을 시켜봤어요. 그런데 게임이 안 될 정도로. 그 사람들도 텔레비전에서 시범할 때 보면 돌려차기 같은 것도 잘 하던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보여주기 위한..
▶ 북한 사람과 막상 붙으면 게임이 안 됩니까?
-저희들은 조금 약하다고 봅니다.
▶ 김신조씨는 항상 자신은 자신 있다고 하던데요.
-그때까지만 해도..그때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 10km를 이동했다고 해서 깜짝 놀라던 시절이니까요. 저희들은 1시간 20분에 16km, 3시간 이내에 32km를 이동해야 되는데 아무것도 아니죠.
▶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감춰라. 이게 무슨 얘깁니까?
-그 안에서 국가기밀 내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적지에서 생포되었을 때는 당연히 감춰야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서약 하는 내용들이 보지 않았다, 듣지 않았다, 말하지 않겠다 이거든요. 기능의 특성상 철저한 기밀 유지는 꼭 필요했겠죠.
▶ 그런데 계급장도 없고 상황에 따라서 북한군 복장도 입습니까?
-모든 장비도.. 카메라나 이런 것도 다 수입품입니다. 국산품을 쓴다고 하더라도 상표가 없는 백지 상태의 제품을 씁니다.
▶ 담배나 가전제품도?
-그렇습니다. 담배도 저희들이 백 담배라고 하는데 마크도 없고. 그런 담배를 씁니다.
▶ 훈련을 하다가 또는 북한에 침투하다가 사망을 하면 어떻게 되요? 그것을 가족들에게 제대로 통보해줍니까?
-비밀 속에서라도 가족들한테 당신네 아들이 국가를 위해서 중요한 일을 하다가 전사를 했다, 이 정도는 알려줬어도 될 법 한데 50년이 경과 되도록 전사통보 하나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50년이 흐른 뒤에 부모가 살아있을 수 없고 대다수가 미혼자들이었기 때문에 처자식이 없습니다. 이런 안타까움이 있고요. 부모들이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40~50년 만에 전사 통보서를 받은 부모들이 어땠겠습니까? 잠도 못자고 올까봐 싸리문 열어놓고. 갑자기 하얀 종이 위에 ‘30년 전에 죽었습니다’ 이렇게 전사 통보를..
▶ 김영대 보좌관은 훈련 중에 가족과 연락은 됐었나요?
-저희들은 없었습니다. 혹시 하더라도 어디에 있다, 군대에 왔다 이런 이야긴 못하게 하니까. 할 필요도 없고. 괜히 주소도 없는 엉뚱한 데.. 예를 들어서 나는 강원도에 있는데 서울이나 부산에 있는 것으로 하면 오히려 부모들이 그쪽에 가서 찾습니다. 편지를 쓰면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거예요.
▶ 그런데 사실 우리 정부도 북파 공작원을 감췄잖아요. 2000년 들어서 공식 인정했는데 수십 년간 어둠속에 묻혀 살았던 거죠. 그 한과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매일 신조처럼 외운 것이 음지에서 싸워 이기고 양지에서 영광을 누린다. 그런데 신조가 잘못되었네요? 양지에서 무슨 영광을 얻었습니까?
-국가를 위해서 희생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감시당하고. 기밀을 누설시킬까봐 외국 여행도 제한 당하고. 취업도 일부 제한당합니다. 그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이 사람을 취업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더라도 거기 출신 자체만으로도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거예요. 승질나면 나도 죽일 수 있을 거 아닌가. 자연적으로 사회적 왕따가 돼서 사회적응을 못하게 되는 거죠.
▶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배우겠죠?
-그럼요. 실질적으로 한 행위나 교육받은 내용을 말하면 잔인해서 눈을 찌푸리거나 돌리거나 머리를 박게 되죠.
▶ 도저히 재연 같은 것은 할 수도 없군요?
-아예 인간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거기서 일 년 정도 세뇌교육 포함해서 혹독한 훈련을 하다 보면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기계적으로 조건반사적으로 태연한 임무처럼 각인이 됩니다.
▶ 기계적인 움직임이군요?
-그렇습니다.
▶ 국가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계세요?
-현재도 우리 동지들은 상당수 그런 마음속에 상대적 박탈감을 지니고 분해하죠. 저희들은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사회적 역차별 때문에 사회적응을 못해서 아주 곤란한 생활에 있는 것을 이용해서 졸속으로 우리를 처리한 부분에 대해서 합리적인 개선안이 나오지 않으면 어떤 문제점이 또 제기될지 모르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오늘 김영대 보좌관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지은 인턴기자(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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