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한창 뜨거웠을 당시였다. 위기감이 들었다. 일은 일대로 많아 스트레스가 심했고, '숫자'를 다루며 행여 실수할까봐 두려워서다. IT전문가인 남편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AI 세무사 좀 만들어봐."
기술로 세무사를 대체할 순 없어도 도움을 받을 순 있겠다고 부부 모두 생각했다. 남편이 개발한 AI기술에 세무사 아내는 단순 반복 업무를 맡겼다. 자신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기술력을 활용해 세무 업무를 보니 시간은 절약되고, 부가가치가 더 높은 서비스에 충실하게 됐다. 바로 사업자들과 소통하며 이들의 '성장'을 돕는 일이다.
세무법인 혜움의 이재희(42·사진) 대표의 창업 스토리다. 이 대표는 세무법인 T&B, 현대카드 세무파트장을 거쳐 지난 2017년 남편과 함께 혜움을 차렸다. 요즘 이 곳에는 1인 기업가나 스타트업 사장님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세법을 잘 몰라도 세무사와 격의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다.
미처 내가 몰랐던 더 낸 세금을 빠르고 정확하게 돌려 받게 해준다니 소상공인들이 더욱 몰렸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혜움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고객들이 세무 서비스에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이 뭔 줄 아세요? 세금을 제대로 내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불신보다 더 큰 불만이 소통이 잘 안된다는 점이더라고요. 지금 당장 나는 세무사와 통화가 필요한데, 어디 한번 제대로 된 적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시는 고객들이 참 많았죠."
[사진제공 = 혜움]
이 대표는 창업 초기 이같은 고객들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카카오톡 기반의 세무 상담이 대표적이다.이 대표는 "담당 세무사가 정해지면 카톡을 통해 사장님들은 수시로 질문을 남기고, 편할 때 답변을 받아볼 수 있게 했다"며 "세무사와의 소통 만큼은 언제라도 확실히 잘 되는 곳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화나 방문 상담이 전부였던 시절 혜움의 카카오톡 기반의 상담은 바쁜 사장님들이거나 카톡을 즐겨 사용하는 젊은 CEO일수록 만족도가 높았다.
업종마다 사업장의 연혁마다 필요한 세무 서비스는 다르다. 그러나 세무사나 기장 담당자가 적게는 40개에서 많게는 60개 이상의 사업자를 담당하다보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사업자의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맞춤형 응대를 해 주는 것이야말로 세무 서비스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혜움이 다른 세무법인과 달리 '택스 테크(Tax Tech)' 를 유독 강조하는 이유다.
"사장님들이 일단 세무적인 일은 신경을 안 쓰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매출부터 손익, 급여 관리 등은 모두 세무사에게 맡기고 사업에 더 몰두하시는거죠. 세무사 역시 마찬가지에요. 단순반복 업무는 AI에게 맡기는 일이 필요했어요. 그래야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니까요."
이 대표의 남편이자 LG전자 기술원에서 일했던 혜움랩스의 옥형석 대표가 조력자가 됐다. 매출이나 손익, 급여 관리를 할 수 있는 대시보드(화면에서 다양한 정보를 한 번에 관리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해놓은 기능)나 사업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시스템 등을 개발해 세무사와 기장의 업무 부담을 덜게 해줬다.
혜움에서 제공하는 경정청구 서비스 '더 낸 세금' [사진출처 : 혜움]
특히 경정청구 서비스 '더 낸 세금'의 경우 AI 기술력을 적극 활용해 세무사와 사업자 모두의 만족도를 높인 성공 케이스다."경정청구는 5년간 사업자가 과납부한 세금을 신청해 돌려받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세법에서 200~300개 정도되는 감면 규정을 일일이 세무사가 검토해야 해요. 하지만 사람이 하다보면 미처 챙기지 못하는 규정이 있고 업무적 부담이 상당해 어려운 측면이 있죠"
사정이 이러다보니 대기업들은 대형 회계법인을 통해 경정청구를 통해 세금을 잘 돌려 받는 반면, 중소기업은 여건이 안돼서 혹은 잘 몰라서 못 돌려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실제로 2020년 법인세와 종합소득세의 경정청구 인용액이 2조원에 달했으나, 대부분이 대기업에 치중돼 있다.
혜움과 혜움랩스가 나섰다. 세무사와 기술자 수십여명이 1년여에 걸쳐 주요 세금 감면 규정을 AI알고리즘으로 개발하고, 다시 세무사들이 최종 확인을 거쳐 국세청에 청구하는 경정청구 서비스를 내놓았다. 법인 사업자 뿐 아니라 개인 사업자까지 대상을 확장해 온라인 상에서 빠르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경정청구 서비스 가입자는 3만명을 넘어섰다. 더 낸 세금 진단을 수행한 사업자 중에는 44%가 환급금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평균 환급금은 730만원이었다. '환급금 조회만으로도 깜짝 놀랐다'라거나 '완전 꽁돈을 얻은 기분'이라는 사업자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 대표는 "경정청구는 어떤 세무대리인이 잘 못한 것을 잡아내는 서비스는 아니다"라며 "그 동안은 채산성이 없어서 하지 않은, 적은 금액이라도 소상공인들이 더 낸 세금을 되돌려 받게 하는 서비스이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세무 시장을 발굴하고 키운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세무법인의 IT 연구소 혜움랩스만의 기술력은 벤처캐피털(VC)에서 눈여겨보고 있다. 이미 스톤브릿지벤처스와 한국투자파트너스로부터 70억원 규모의 시리즈A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2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아기유니콘 60개사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말했다. "세무시장은 최근 데이터를 보면 1위 업체가 전체의 0.7%를 차지하는, 상당히 파편화된 시장이에요. 또 매년 700명의 세무사가 탄생하죠. 경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어요. 세무사가 주체가 되는IT 기술력으로 세무 혁신을 이뤄 경쟁력을 확보할 거에요. 그래서 엄마가 아이 돌보듯 창업가의 꿈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돌보며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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