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아선 입점업체랑 '할인·특가·세일' 등의 말을 쓰는 것조차 꺼려져요." (A백화점 영업담당 직원)
"주말 쇼핑 자료로 낼 게 없어요. 판촉비 부담 기준이 모호하니까… 할인 행사 알리는 게 조심스럽죠."(B백화점 홍보담당 직원)
12월 정기세일을 준비 중인 백화점들의 속내가 복잡하다. 최소 한 달 전에는 입점업체와 할인 품목·할인율 등에 관해 논의를 해야 하지만 잡혀 있던 세일 행사마저 취소하는 분위기다.
각종 할인 행사를 알리기에 급급했던 백화점들이 최근 할인 앞에 벌벌 떠는 이유는 다름 아닌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세일 관련 지침 때문. 지침 중에서도 백화점의 할인 행사비 부담을 누가 지느냐를 두고 판단 기준이 매우 모호해 몸을 더 사리고 있다.
공정위가 내놓은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는 백화점이 세일을 '주도'하면 할인 행사 비용 중 절반 이상을 백화점이 부담해야 한다.
공정위는 백화점이 설정한 정기세일 매출 목표 달성 등을 위해 입점업체에 과도하게 세일을 강요해왔고, 가격 할인에 따른 판촉비 부담을 부당하게 전가해왔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특약매입 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라 이를 막겠다는 것이다.
물론 백화점이 할인 행사 주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면 판촉비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 입증에는 두 가지 조건 충족이 필요하다. 할인 행사를 두고 입점업체의 '자발성'과 '차별성'이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자발성 요건은 대규모 유통업체의 사전 기획이나 요청없이 입점업체 스스로 행사 시행을 기획하고 결정한 경우에만 인정받을 수 있다. 차별성 요건은 판촉 행사의 경위·목적·과정·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른 입점업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때에만 인정한다고 개정안에 명시해놨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침상 입점업체가 자발적으로 할인 행사를 (백화점에) 요청하고, 동시에 다른 입점업체와 차별화되는 판촉행사를 시행했다면 백화점 주도의 할인행사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백화점업계에서는 공정위가 판촉비 부담 예외 조건으로 내건 두 가지 모두 다 현실적으로 판단 내리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어디까지를 입점업체의 자발성으로 봐야할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특히 '차별성 요건'의 경우 공정위 기준은 더 애매해 입점업체와 백화점 간 다툼의 소지가 있다.한 백화점 관계자는 "그나마 자발성 요건은 세일 요청을 먼저 한 입점업체로부터 관련 공문을 받거나, 정기세일 정보를 (백화점 측이) 입점업체에 사전 고지했다해도 업체 필요에 따라 협의를 진행해 결정한다면 충족시킬 수 있다"면서 "하지만 세일 행사의 차별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당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대부분의 세일 행사 목적이라는 게 가격을 낮춰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는데 있는데, 이 목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냐"며 "특히 백화점에서 하는 마케팅 방식 역시 다 비슷비슷한데 내용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차별화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결국 세일 행사를 두고 백화점 입장에선 입점업체의 자발성 요건을 충족해도 차별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 두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면 할인 행사에 따른 비용 부담을 50% 이상 져야하는 백화점들로서는 아예 세일 행사를 벌이지 않고, 할인 얘기를 입점업체에 먼저 꺼내지도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입점업체의 세일 행사 결정에 있어 '백화점의 개입 여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게 차별성 요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세일을 하겠다는 공문을 입점업체가 백화점에 보냈더라도, 할인 품목이나 기간, 할인율, 마케팅 방식 등을 정함에 있어 백화점이 개입했는지를 보기 위해 차별성 요건을 달아둔 것"이라며 "만약 백화점이 개입해 입점업체의 세일 행사 목적이나 내용 등 차별성을 헤쳤다면 당연히 판촉비 부담을 50% 이상 져야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백화점에서 할인 행사를 벌이는 방식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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