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환자의 유전체 특성에 따라 맞춤 치료하는 초정밀 의료가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삼성서울병원은 혈액종양내과 이지연·김승태·강원기 교수, 병리과 김경미 교수, 소화기내과 이혁 교수 공동 연구팀은 전이성 위암 환자의 유전체 기반 개인 맞춤 치료 효과를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미국암학회 학술지인 캔서 디스커버리(Cancer Discovery, IF 26.4) 최근호를 통해 발표된 데 이어, 지난달 네이처(Nature) 온라인 뉴스에서 선정한 혁신적 연구성과로 소개됐다.
연구팀은 암 정복 의지를 담아 '빅토리(VIKTORY, targeted agent eValuation In gastric cancer basket KORea)'로 연구 이름을 정하고, 2014년 3월부터 2018년 7월까지 1차 항암화학요법을 마친 전이성 위암 환자 772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연구팀은 환자의 유전체 정보 뿐 아니라 단백질체 등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고려할 수 있도록 다중오믹스 방식으로 이들 환자를 분석했다. 이어 분석 내용을 바탕으로 환자 치료에 필요한 약물을 정확하게 짚어 내기 위해 엄브렐러 임상시험(Umbrella trial)으로 약물을 골랐다. 엄브렐러 임상시험은 환자에게 어떤 약이 효과 있을지 수많은 후보 약물을 한 번에 시뮬레이션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암치료 기관인 MD앤더슨에서 2008년 도입하면서 알려졌다.
연구팀은 유전체 분석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환자 715명을 대상으로 미리 정한 8가지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에 부합하는 환자들을 추렸다. RAS, TP53, PIK3CA 등 현재까지 보고된 암 관련 유전자의 돌연변이 유무 등에 따라 선별된 105명에게는 해당 바이오마커에 맞는 약물을 투여했다.
나머지 환자 중 2차 치료가 필요하거나 가능한 317명에게는 기존 치료법 대로 약물을 투여한 뒤 경과를 지켜봤다. 그 결과 두 그룹 간 생존율은 환자 예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이나 성별, 전이된 장기 개수 등을 모두 반영하고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나타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기존 치료법대로 2차 치료까지 마친 환자 그룹의 중앙 생존값은 6.9개월로 집계됐다. 바이오마커에 따라 치료받은 그룹은 9.8개월로 약 3개월 더 길었다.
병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은 무진행 생존기간 또한 바이오마커 치료 그룹이 더 길었다. 바이오마커 치료 그룹의 무진행생존기간은 5.7개월로, 기존 치료법 그룹은 3.8개월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연구에서 면역항암제에 반응이 없던 위암에 대해서도 치료 가능성을 엿보는 계기가 마련됐다.
바이오마커 그룹 환자 중 일부에서 치료 후 면역항암제 치료 대상 기준인 PD-L1 단백질의 발현율 증가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연구를 총괄한 이지연 교수는 "유전체, 면역 염색, RNA 시퀀싱 등 원스톱으로 여러 암 표지자를 한번에 분석해 얻은 값을 토대로 맞춤 치료 효과를 세계 최초로 입증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면서 "국내 의료진의 힘으로 국내 병원에서 이뤄낸 성과라 더욱 값지다"고 설명했다.
유전체 분석을 총괄한 김경미 교수는 "위암은 매우 복잡한 암으로 다양한 분석 기법이 동원되어야 환자 예후를 향상시킬 수 있다"며 "앞으로 더욱 정확하고 정밀한 환자 개인별 암 분석 연구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에 앞서 지난해 기존 항암제로 치료가 어려운 전이성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체 분석을 통해 어떤 환자에게 면역항암제 효과가 있을지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지에 발표해 학계 주목을 받았으며,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전이성 위암에서 유전체 분석과 면역치료 퍼즐을 맞춰 나갈 예정이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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