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제 일을 소개한다면요? 주로 엄마가 싫어하는 걸 중계하는 캐스터입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소재 카페에서 만난 성승헌 게임 전문 캐스터의 입담은 거침이 없었다. 올해 열린 넥슨 기자간담회마다 단상에 서서 말끔하게 사회를 보던 그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피파온라인,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던전앤파이터, 리그오브레전드 등 유수의 게임 대회는 물론 종합격투기 대회 UFC와 레이싱 중계석마다 자리하며 두터운 팬층을 갖고 있는 그다. '애드리브'가 주특기인 만큼 입심이 상당했지만, 한마디 한마디마다 무게가 실렸다. 말의 무게만큼 일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담겼다.
"지금은 여성들도 많이 좋아하지만, 과거엔 주로 남성이 즐기는 남성 지향 콘텐츠였어요. 엄마들이 싫어한단 것도 그 이유죠. 매니악한 만큼 중계 전문 인력도 적고, 벽도 높다보니 방송 준비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연출 출신 캐스터다. 피디 지망으로 방송 현장에서 짐을 나르며 일하다 스스로 좋아하는 게 방송 현장인지, 방송을 직접 하는 것인지 고민이 찾아왔다. 초반엔 조연출을 할 때보다 수입이 줄었지만 방송에 직접 출연하면서 즐거움이 커졌다. 성 캐스터는 "방송을 할수록 스스로를 가장 흔들어 놓고 재밌는 게 게임 중계였다"며 "이쪽으로 방향을 잡은 뒤엔 게임 중계를 파고 들어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성 캐스터는 선수들의 유튜브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선수들의 연습 방법과 연습량 등을 전해 들으며 취재를 많이 한다. 게임 플레이도, 중계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사람에 대한 취재와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고 여긴다.
책도 늘 접하려 한다. 중계할 때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성 캐스터는 "제 중계 방식은 빠른 은유와 비유, 소위 말하는 애드리브다. 건조하게 갈 수 있는 곳에서도 활력소가 될 수 있도록 포인트를 줘 말하는 방식"이라며 "결국 말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활자를 자주 찾아 읽는다. 활자는 나도 모르게 머리에 남아서 튀어 나올 때가 많아 의도적으로라도 책을 많이 읽으려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성승헌 게임 전문 캐스터 [사진 = 본인 제공]
게임 전문 캐스터라면 게임을 많이 할 거 같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 시간은 많지 않은 것도 이 이유다. 그는 "게임 캐스터라고 하면 게임을 얼마나 잘 할지, 얼마나 자주 할지 궁금해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며 "게임 중계는 얼마나 플레이를 잘하는가가 아니고 이 플레이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직접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대단하게 보이려면 그 선수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이 동작이 이 상황에서 얼마나 필요하고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빠른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면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고 강조했다.그는 게임 중계란 배경음악(BGM)이라고 생각한다. 중계가 좋으면 게임 영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정말 좋은 영상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성 캐스터는 "좋은 부분을 더 좋게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중계"라고 말했다.
이젠 농익을 때도 됐다 싶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중계는 물론 게임 공부를 한다. 성 캐스터는 "백그라운드가 중요하다.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신작이 나오면 게임 디렉터가 과거 어떤 개발을 했고, 당시 어떤 세계관을 제시했고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한다"며 "서비스 하는 곳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어떤 방향성을 갖고 게임을 출시했는지 당시 반응은 어땠는지 종합적으로 알아둔다"고 전했다.
최근엔 지인과 함께 스튜디오를 만들어 현실세계에서 게임을 펼친다. 특정 장소에 모여 미션을 수행하면 상품을 준다. 얼마 전엔 현금 100만원을 그 자리에서 즉시 주는 게임을 유튜브로 중계했다. 현실 속에서 꿈을 이뤄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의 그의 목표다.
그는 엄마가 싫어하는 걸 중계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재밌는 걸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졌고, 이 일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좋은 일을 하겠단 목적의식도 직업 덕분에 생겼다.
성 캐스터는 "사실 게임 중계가 중계 중엔 최상급의 대우를 받는다. 선후배 모두 열심히 해온 결과이기도 하고, 업계 특성도 반영됐다"면서 "하지만 한편으론 후배들이 댓글로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면 내가 지금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고민하게 된다. 후배에게 '형 때문에 (중계 일을) 하게 됐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가슴이 뛰는 만큼 이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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